서울 중구 만리동1가 만리동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포용하지 못한 ‘빈곤한 비수급자’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내세운 대책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 강화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구축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의 수집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늘리기로 했다. 수원 세 모녀처럼 주민등록 주소와 실거주지가 다르면 실종자·가출자처럼 경찰청이 수색을 지원하는 안을 검토한다. 1년 이상 건강보험료를 연체한 가구를 대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기획 발굴’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발굴하는 위기가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현장 인력(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
이 부족해 복지 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발굴 시스템이 찾아낸 위기가구 수는 2018년 36만6천명에서 2021년 133만9천명으로 3.7배(265%) 증가했지만, 찾아가는 복지팀 인력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 1인당 담당하는 위기가구 수만 4년간 3배 증가한 셈이다. 게다가 찾아가는 복지팀을 운영·관리하는 ‘주민복지서비스 개편 추진단’은 8월31일부로 활동을 종료했다. 대통령 훈령인 ‘주민복지서비스 개편 추진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11조(존속기한)에 따른 조처다. 보건복지부는 31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추진단’을 우선 설치해 (향후) 대책을 강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스템이 발굴하는 사각지대는 늘어나지만, 정작 제도적 지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 133만9909명 가운데 50.5%(67만6035명)가 복지서비스를 아예 받지 못했다. 복지서비스를 받았더라도 대부분(48만2533명·37.2%)은 단기·일시적으로 지원되는 민간 서비스였다. 기초생활보장 2.1%(2만8611명), 긴급복지 1.5%(1만9664명), 차상위 0.8%(1만1180명) 등 공공서비스는 12.3%(16만5195명)에 그쳤다.
위기가구가 복지서비스로 연계되는 비율이 낮은 이유로는 공공부조의 높은 문턱이 첫손에 꼽힌다. 기초생활보장
급여 지급 기준이 기준 중위소득의 30~50%(1인가구 58만~97만원)로 낮은데다 기준 중위소득(1인가구 194만원)도 정부 공식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앙값(254만원·2019년)보다 60만원이나 적다. 수급 여부를 정하는 소득·재산(소득인정액) 기준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꾸준하다. 생활 유지에 꼭 필요한 집값을 서울 기준 6900만원으로 산정하고, 그 이상의 재산은 소득으로 환산하는 게 대표적이다.
까다로운 소득·재산 기준 때문에 전체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 수급률은 2001년 3.2%에서 지난해 4.6%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가족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서 2020년에야 4%로 올라갔다. 전체 가구 중위소득의 50% 이하로 생활하는 상대적 빈곤층이 15.3%(2020년)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복지제도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빈곤)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 기준 완화 속도가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우리 사회가 (빈곤층에)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이 4%밖에 안 되는 건지, 더 지원할 수는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복지 현장에 재량권을 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지자체에 예비 기금 같은 게 있어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10% 정도는 그 기금을 쓸 수 있을 때 (지자체에) 재량 권한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임재희 장현은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