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결과 한국 정부는 하나금융지주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 2억1650만달러(약 2900억원)와 이자를 배상할 처지에 놓였다. 판정 결과를 놓고 정부는 ‘선방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절반의 패소’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론스타가 주장한 46억7950만달러(약 6조3천억원)가 의미있는 소송 가액인지, 부풀려진 금액인지를 놓고 입장차를 보이는 모양새다.
지난 2012년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을 내며 요구한 금액은 46억7950만달러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입은 손해 17억달러와 △국세청에 부당하게 낸 세금 8억달러 △론스타가 승소했을 경우 배상받을 돈에 대한 세금 22억달러 등이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지난 31일 한국 정부에 배상하라고 인정한 부분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입은 손해 17억달러 가운데 홍콩상하이은행(HSBC) 매각 손해를 뺀 하나금융지주 매각 손해 부분이다. 중재판정부는 하나금융 매각 과정에서의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과실을 각각 절반씩 인정해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했다.
법무부는 론스타가 주장한 46억7950만달러 가운데 4.6%에 불과한 2억1650만달러만 배상하면 되기 때문에 ‘선방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론스타 쪽 당초 주장이 크게 부풀려진 금액이고, 실제 판정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하나금융 매각 손해’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양쪽이 재판에서 다툰 금액은 46억7950만달러가 아닌 4억3천만달러이고, 그 중 절반을 배상하게 됐으니 사실상 ‘절반의 패소’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홍콩상하이은행 매각 손해’는 2011년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 발효 이전 발생한 문제로 애당초 중재판정 관할권이 없을 뿐더러, 당시 홍콩상하이은행과의 매각 시도는 실현된 손해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ㄱ씨가 자신의 아파트를 ㄴ씨에게 팔려다 실패하고, 나중에 거래가 성사된 ㄷ씨와 매매 계약 당시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ㄷ씨에게 싸게 판 손해 뿐만 아니라 ㄴ씨에게 팔지 못한 집값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ㄱ씨는 론스타, ㄴ씨는 홍콩상하이은행, ㄷ씨는 하나금융이다.
전문가들은 세금과 관련한 론스타 쪽 청구도 터무니 없는 주장이었다고 평가했다. ‘부당 과세’ 주장 역시 2011년 이전 행위는 아예 관할권이 없고, 2011년 이후에 이뤄진 처분은 국내 법원에서 이미 재판을 받은 사안이라 국제투자분쟁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전체 소송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론스타가 승소했을 경우 배상받을 돈에 대한 세금’(22억달러)을 청구한 것은 전부 승소를 전제로 그 세금까지 내놓으라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20년 11월 론스타가 국제투자분쟁 철회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한 협상액이 8억7천만달러였다는 점을 보면, 론스타 본인들조차 청구 금액이 과하다는 점은 어느정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론스타는 하나금융 매각 과정 손해와 국세청 부당 과세 처분 일부만 배상할 것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홍콩상하이은행 매각 손해와 미래 승소 배상액 관련 세금, 일부 과세 처분 등 약 38억달러는 제외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공식 협상안으로 보기 어렵다며 응하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소송 가액을 부풀리는 것은 하나의 소송 기법일 뿐이다. 론스타가 지난 2020년 제안한 협상안을 보더라도 소가가 부풀려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표면적인 금액을 갖고 ‘선방했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양쪽이 진검 승부를 다툰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금융 매각 과정에서의 손해 배상 여부가 쟁점이었고, 우리가 절반은 패소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론스타가 주장한 금액은 처음부터 말이 안됐다. 분쟁에서 유일한 쟁점은 하나금융 매각 손해 부분이다. 중재판정부는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 양쪽의 책임을 모두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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