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국제투자분쟁’(ISDS)이 10년 만에 일단락됐다. 중재판정에서는 두 차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의 한국 정부 승인 지연과 손해, 부당 과세 등이 쟁점이 됐다. 사건을 맡은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론스타 주장 가운데 하나금융지주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 일부를 인정했다.
론스타가 지난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을 내며 요구한 금액은 총 46억7950만달러(31일 환율 기준 6조2677억원 상당)이다. 론스타가 분쟁에서 주장한 쟁점은 △홍콩상하이은행(HSBC) 매각 불발로 인한 손해 △하나금융 매각 승인 지연 및 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 △이중 과세 등 부당 과세 등이다.
중재판정에서 핵심이 된 부분은 ‘하나금융 매각 승인 지연 및 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 인정 여부였다. 론스타는 2011∼2012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시켰고, 하나금융과 공모해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낮춰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론스타가 추진한 매각 가격은 43억4천만달러였는데, 한국 정부의 방해로 실제 매각은 35억1천만달러에 이뤄져 약 8억3천만달러를 손해봤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이 가운데 배당금 4억달러를 뺀 4억3천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당시 론스타 대표와 법인이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으므로 매각 심사 연기는 정당했다고 맞섰다.
중재판정부는 31일(한국시각)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지연한 것은 부당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 판결도 매각 가격 인하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중재판정부는 이날 “한국 금융위원회가 매각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권한 내 행위가 아니므로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다만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형사 유죄판결 책임도 있다”며 론스타와 한국 정부에 각각 절반씩 책임을 물어 2억1650만달러(31일 환율 기준 2900억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했다. 또 2011년 12월 3일부터 배상액을 모두 지급하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법무부는 이자로 약 185억원을 추산했다.
전체 청구액 가운데 인정된 배상액이 4.6% 남짓에 그치면서 법무부 내부에서는 ‘이만하면 선방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나 당초 국제중재 양 당사자가 첨예하게 맞붙은 쟁점은 ‘하나금융 매각’ 하나 뿐이어서, 사실상 ‘절반의 패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는 3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6조원 소송 가액은 터무니 없이 부풀려져 있다. 실제 쟁점은 하나금융 매각 대금이 깎인 부분으로 사실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청구액은 7700억원 수준”이라며 “애초 대주주 자격도 없는 론스타에 국민 세금으로 3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배상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의를 제기해 전부 승소를 받아내겠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론스타 관련 행정조치는 국제법규와 조약에 따라 차별없이 공정·공평하게 대우했다. 정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중재판정부 다수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향후 중재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검토해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협정에 따라 중재 당사자는 판정 후 120일 이내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중재판정부는 하나금융 인수 매각 대금을 제외한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전부 한국 정부의 손을 들었다. 론스타는 2007∼2008년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해 홍콩상하이은행(HSBC)과의 거래가 무산됐다고 주장했지만, 중재판정부는 “2011년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 발효 이전에 발생한 행위에는 관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중과세 등 부당 과세’와 관련해 론스타는 한국과 벨기에가 맺은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라 론스타에 일부 면세혜택을 줘야했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부당하게 무시해 면세혜택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중재판정부는 “일부 과세처분은 2011년 투자보장협정 발효 전에 부과한 것으로 판단 대상이 아니고, 한국 정부의 과세 처분은 국제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자의적·차별적 대우가 아니”라고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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