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4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론스타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직권취소 결의대회.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줘야 할 배상액이 2900억원가량으로 애초 청구액(약 6조원)보다 크게 줄었으나 ‘선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금융당국에 잘못이 있다는 론스타 쪽 주장의 일부가 인정돼 지연이자(185억원)까지 포함하면 3천억원이 넘는 ‘혈세’ 투입이 불가피해서다. 또 시민단체들은
론스타가 근본적으로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으며, 이 때문에 국제분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국 정부가 내용 면에서 크게 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31일 한국 정부에 2억1650만달러(환율 1340원 기준 2901억원)를 론스타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중재판정부는 “2011~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할 때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하고,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는 론스타 쪽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 정부의 홍콩상하이은행(HSBC) 매각 승인 지연, 부당한 조세 청구 건에 대해서는 론스타 쪽 주장을 기각했다. 이로써 최종 배상액이 론스타가 청구한 46억7950만달러(약 6조2705억원)보다 크게 줄면서 선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제분쟁의 핵심이었던 금융 부분에서 한국 정부의 잘못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에 “한국 정부의 금융 감독에 잘못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인데, 여기서 이기지 못했다”며 “한국 정부가 조세 부분에서 졌다면 과잉 청구한 세금을 돌려주면 되지만, 금융 감독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은 ‘모피아’(재정·금융 관료+마피아)의 잘못으로 국민이 생돈을 물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론스타는 국제분쟁을 제기할 자격조차 없었는데, 정부가 처음부터 이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론스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었다면 외환은행 인수가 애초 불가능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2003년 산업자본 여부를 꼼꼼하게 판단하지 않은 채 시행령으로 론스타에 ‘은산분리’ 예외의 길을 터줬으며, 2012년이 되어서야 “론스타가 2010년 말 기준으로는 산업자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기묘한 결론을 내렸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2014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금융당국이 이미 2008년 론스타가 산업자본인 점을 알았음에도 묵인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만약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면 2003년 외환은행 인수인 첫 단추부터 원천무효이며, 국제분쟁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제분쟁에서 관련 내용을 쟁점으로도 올리지 않았다. 정부가 실수를 감추려 소송에 유리한 부분을 스스로 제외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국제통상위원장)는 “애초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국민 세금으로 배상을 해주는 것이므로 완전한 패소”라고 말했다.
한편, 현 정부 경제팀 다수는 론스타 사건과 연관돼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한덕수 국무총리는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고문이었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은행제도과장이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의혹이 나온 2008년 금융위 부위원장이었고, 추 부총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되판 2012년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이었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그때 금융위 사무처장으로 재매각을 지휘하고 있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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