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을 평소 스토킹하던 직장동료가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서울 신당역 입구에서 17일 오후 추모 집회를 한 시민들이 글과 조화로 숨진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처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스토킹 범죄가 선행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계획 살인의 비율이 3배가량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 사건 피의자 전아무개(31)씨의 혐의를 살인에서 ‘보복살인’으로 변경한 경찰도 전씨의 사건 직전 행적 등을 고려해 계획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18일 김성희 경찰대학 경찰학과 교수와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8월 <교정연구>에 발표한 ‘친밀한 파트너 살인의 특성에 관한 연구: 헤어진 파트너 대상 스토킹을 중심으로’를 보면, 국내에서 2017∼2019년 친밀한 파트너를 살해한 336건의 살인사건(살인미수·예비 포함) 중 37.5%가 살해 전 스토킹이 있었다. 특히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 범행을 계획한 비율은 63.5%로, 비스토킹 살해 사건(21.4%)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았다. 비스토킹 사건은 열등감·정서불안(24.2%), 시기·질투·집착(22.2%) 등 범행동기가 고루 분포됐으나, 스토킹 사건에서는 시기·질투·집착이 58.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스토킹범죄와 같은 사건의 초기 대응 시 가해자 분리와 피해자 보호조치 병행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헤어진 연인 등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스토킹 범죄가 계획범죄로 이어진 경우다. 연구를 진행한 이수정 교수는 “연구는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스토킹 범죄를 대상으로 했지만 일반적인 스토킹 사건의 경향성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스토킹 살인 사건의 특성상 판결문에 피해자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씨의 경우에도 범행 당일 일회용 위생모와 흉기 등 범행도구 준비를 비롯해 사전에 범행을 결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피해자 ㄱ(28)씨를 불법촬영하고 협박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뒤 직위해제된 전씨는 범행 당일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챙겨 피해자가 살았던 거주지를 찾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거주지를 이미 옮긴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자 7분이 넘도록 다른 여성을 미행하기도 했다. 이후 전씨는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에서 ㄱ씨 근무지와 야간 근무 일정 등을 확인했다. 그는 같은날 자택 근처 현금인출기에서 1700만원을 인출하려다가 인출 한도 초과로 실패하기도 했다. 경찰은 전씨가 현금을 도주자금으로 사용하려 한 것 아닌지 조사 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일각에서는 스토킹 전조에도 살인을 막지 못한 수사기관 등의 책임을 부각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스토킹 계획살인’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나왔다. 수사기관·법원·회사 등이 살인의 전조였던 스토킹 사실을 파악하고도 계획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것을 부각하자는 취지에서다. “(가해자가) 불법촬영 카메라를 걸려 원한을 품고 스토킹하고 계획살인하는 도중에 한번도 공권력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공포다”, “순찰 시간을 계산한 것부터 명백히 계획살인인데 법원은 형을 최대로 줘야 한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피해자와 같은 청년 여성인 황아무개(30)씨는 “오랫동안 지인을 괴롭힌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의 부모 집 주소를 알아내 택배를 보내는 걸 본 적이 있다. 스토킹 범죄 자체가 계획적이고 치밀한 특성을 지니고 이를 방치할 경우 계획 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스토킹 범죄의 경우 자신의 마음대로 피해자를 대하려다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살인으로 이어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 등 수사기관이 사건 초반에 취할 수 있는 공권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19일 열릴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에서 전씨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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