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된 카카오티(T) 주차 사전무인정산기. 연합뉴스
“팀장은 주말 저녁 10시에도 업무 지시를 했다. 그의 카카오톡은 주말에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그의 지시를 듣지 않을 수 있었고 무시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15일 오후 카카오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부터 이튿날까지 카카오톡 메신저 접속이 원활하지 않자, 직장인 정아무개(29)씨는 “오히려 좋다”는 반응이었다. 리서치 업무를 담당하는 정씨는 주말마다 팀장으로부터 새로 알아봐야 할 주제를 짧게 통보받아야 했다. 정씨는 17일 “문서 파일 등은 문자메시지로 보내기 어려워서 그런지 카카오톡이 중단된 이후에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던 것 같다”며 “팀장에게서 오는 알림 진동이 없어서 편했던 꿀맛 같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니 아쉽다”고 했다.
국내 메신저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카카오톡 서비스가 10시간 넘게 중단되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처럼 강제로 연락이 차단돼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기기 사용을 전면 중단)를 실천했던 셈이다. 에스앤에스(SNS) 등에서도 “이왕 이렇게 된(카카오톡 먹통) 김에 디지털 디톡스나 하자”는 식의 반응이 이어졌다.
지인의 연락을 일일이 답장하기 귀찮았다던 양아무개(31)씨도 “보통은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하지 않으면 되지만, 늘 마음의 짐은 있었다”면서 “이번 주말은 카카오톡 중단으로 그런 마음의 짐도 없는 아주 편안한 하루였다”고 했다. 직장인 김아무개(34)씨는 “카카오톡이 멈춘 날, 가기 귀찮았던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카오 서비스가 하루새 회복되자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었다. 최근 업무량이 많아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던 이아무개(31)씨는 “갑자기 카카오티(T) 서비스가 정상이 됐다는 소식을 들어 슬펐다”고 했다. 그는 택시 호출 서비스를 지원하는 카카오티 서비스 먹통을 계기로 회사로 출근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이씨 회사는 법인카드를 카카오티에 등록해 직원들이 야근 시 퇴근할 때 사용하도록 해놨다. 이씨는 “퇴근할 때 택시가 잡히지 않으면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할 수 없는데 월요일을 앞두고 서비스가 정상화돼 원래대로 근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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