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15일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컵 준결승에서 96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공식 사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1989년 축구 경기장에서 관람객 97명이 압사한 뒤, 정부가 나서 23년 만에 보고서를 발간해 경찰관의 과실치사 책임을 끝까지 추궁한 영국 정부의 대처와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1989년 4월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 경기장에서 축구팬 97명이 압사하고 700명 이상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시합 시작을 앞두고 수많은 팬이 몰리면서 경찰이 출입문을 추가로 개방했는데, 여기로 너무 많은 사람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일부 팬들이 술에 취해 입장권 없이 경기장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발생한 사고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고 20년 뒤인 2009년 노동당 소속 앤디 번햄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이 리버풀 구장에서 매년 열리던 추모식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관중들의 목소리에 재조사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당시 내각은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탐사보도 기자, 인권 변호사, 의사, 범죄학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는 2012년 경찰이 사건 당일 최소한의 저지선도 마련하지 않는 등 부실대응했고, 이로 인해 ‘중대한 직무유기로 인한 과실치사’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참사가 벌어진지 23년 만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156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뒤 정부·지자체가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이어가면서 “그러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대체 누가 책임지나”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다’, ‘매뉴얼이 없다’며 책임을 피해가고 있지만, 외신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압사 사고를 겪은 뒤 지자체와 경찰에 책임을 물은 사례가 있다. 2001년 7월 효고현 아카시시의 육교에선 아이 9명을 포함한 11명이 압사하고 183명이 상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꽃놀이로 극심한 혼잡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찰과 경비업체는 폭주족 단속에만 300명 가까운 인력을 배치했으면서 질서유지에는 단 36명의 인력만 투입했고, 경비계획마저도 반년 전 사용했던 연말 불꽃놀이 경비계획서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조사됐다. 10만 인파를 예상했음에도 질서유지를 위한 정복경찰을 58명만 배치한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대목이다.
2022년 4월13일 리버풀 팬들이 경기에 앞서 힐스버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건 직후 경비업체 등에서는 “무리하게 밀치는 사람이 있었다”며 책임을 피해 가려 했지만, 일본법원은 업체뿐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 모두에 책임을 인정했다. 경비업체와 일부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돼 금고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유족들이 지자체와 경찰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도 법원은 총 5억6800만엔의 손해배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등 국가와 지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외신도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문제 삼고 있다. 기어로이드 레이디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1일 ‘핼러윈의 비극은 매우 인기 없는(Deeply Unpopular) 지도자를 위한 시험’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많은 사람은 이태원에 137명의 경찰을 배치한 것이 적절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이 사건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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