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 근처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2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추모 글귀, 국화 등이 놓여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가 156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할 기회를 몇차례나 놓친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특히 ‘압사될 것 같다’는 첫 112 신고가 접수된 뒤 5시간이 지나고서야 경찰 수뇌부가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경찰의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참사 당시 이임재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뇌부의 총체적 판단 마비 속에 골든타임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경찰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10월30일 자정을 넘긴 0시14분 경찰청 상황1담당관한테서 휴대전화로 이태원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다고 2일 밝혔다. 소방청이 최초 신고를 받았다고 밝힌 시각(밤 10시15분)에서 1시간59분, 경찰 112 신고센터가 첫 신고를 받은 시각(저녁 6시34분)에서 5시간40분이 흐른 뒤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보다 38분 앞선 29일 밤 11시36분 이임재 용산경찰서장한테서 휴대전화로 상황을 보고받았다.
앞서 이날 오후 4시부터 사고 현장에서 약 2㎞ 떨어진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에서 진보단체로 구성된 촛불승리전환행동이 주관하는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을 위한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이 진행됐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장이 밤 9시께 끝난 집회 경비를 지휘하는 동안, 이태원에선 무고한 시민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윤 청장이 앞서 1일 “읍참마속의 각오로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으나 소수의 현장 경관들이 사력을 다해 구조에 나서는 동안 경력 배치의 전권을 쥔 컨트롤타워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사이 참사의 징후는 무시됐다. 마스크 없이 처음 열리는 ‘노마스크’ 핼러윈 축제였던 만큼 경찰 내부에서 먼저 우려가 나왔다. 사고 사흘 전 용산경찰서 정보관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연인원 10만명 정도의 참가가 예상돼 보행자 도로 난입, 교통불편 사고 우려, 마약·성범죄 폭력 등이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서울경찰청에 제출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규모와 문제의 수준”이라고 밝혔다.
재난관리의 법적 의무를 진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용산구도 손을 놓고 있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는 무책임한 변명이 뒤따랐다. 핼러윈 축제를 사흘 앞둔 10월26일 이태원 상인모임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와 용산경찰서·용산구청 관계자, 이태원역장 등이 4자 간담회를 열었지만, 이곳에서도 군중과 관련된 안전 대책은 세우지 않았다. 경찰은 참사 이후 ‘상인회가 현장 통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인회 쪽은 <한겨레>에 “차량이 거리를 막는 걸 우려했을 뿐, 안전사고 예방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절박한 구조 요청마저 묵살됐다. 참사 당일 저녁 6시34분부터 11명의 시민이 ‘압사될 것 같다’는 호소를 112 신고센터에 했지만, 경찰은 11건 중 4건만 현장 출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밤 9시7분부터 10시11분까지 긴급 출동이 필요한 ‘코드0’과 ‘코드1’로 분류된 신고가 5건 접수됐지만 모두 전화상담으로 마무리했다. 이 시각 이미 참사 현장의 시민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었다는 게 생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참사 직후 이송 대책도 엉망이었다. 30일 새벽 참사 현장에서 심정지자를 포함한 사상자 82명이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희생자들의 마지막 떠나는 길조차 아비규환이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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