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청소년, 검정고시 분투기]
“편견 없는 어른도 있다는 걸 알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상적인 일 하고 싶은데 안 써주니까 불법을 하는 거죠”
“편견 없는 어른도 있다는 걸 알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상적인 일 하고 싶은데 안 써주니까 불법을 하는 거죠”

박시원(21·가명)씨가 지난달 6일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유석진(20·가명)씨가 지난달 5일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① 석진석진(20)씨는 자신을 “때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시비를 건 친구의 이 두개를 부러뜨리고, 고등학교 때는 폭행으로 재판을 3번 받았다. 석진씨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자신이 폭력을 가볍게 생각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제가 왜 때리는 사람이 됐는지부터 찾아보면 폭력으로 인해 폭력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같이 살던 친구들도 그렇고, 맞으면 말을 잘 들었어요. 그런 걸 계속 보니까 다른 사람이 말을 안 듣네? 그럼 나도 한대 때려볼까 생각이 바뀌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딱 지옥 같았어요.” 그는 태어나자마자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누군지 모른다. “시설에 부모님 연락처가 있다고 들었지만, 봐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 보지 않았어요.” 시설에선 “밥을 늦게 먹는다” “밖에 나갔다”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매일 때렸다고 한다. 석진씨 역시 싸움이 일상이 됐다. 예체능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시설에서 “공장 일”이나 하라며 강제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하면서 더욱 학교에 마음을 못 붙였다고 했다. 결국 2학년 때인 2018년 석진씨는 자퇴했다. 이유를 묻자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맞이한 사회는 냉혹했다. 그도, 친구들도 일자리 구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보호종료가 된 뒤에 매일 저녁에 일어나서 피시방 갔다가 집에 오는 일이 반복됐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새벽 담배를 피우다가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란 생각에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보성쌤(‘작공’ 장보성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저 대학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에 답이 없습니다’라고 했죠.” 석진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를 통해 작공을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시설에 있는 것도 억울한데 어른들은 제 겉모습만 보고 잘해줄 것처럼 하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도망가기 바빴어요. 그런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보니 어른들은 다 그렇구나란 생각을 엄청 많이 했죠.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조건 없이 ‘어서 와’라며 저를 맞아주셨어요. 그 자리에 계속 있는 어른도 있다는 걸 알면서부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유석진(20·가명)·심유경(19·가명)·김수진(19·가명)·박시원(21·가명)씨는 지난달 <한겨레>와 인터뷰 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② 시원석진씨와 같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시원(21)씨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7년 9월 친구를 때려 재판을 받기 위해 소년분류심사원에 가게 된 뒤 자퇴했다. “싸우는 게 당연했어요.” 숨만 내쉬어도 온 방을 이산화탄소로 가득 채우는 또래 남자아이 10명과 부대끼며 커왔다. 보고싶은 티브이(TV) 채널 하나, 먹고 싶은 음식 하나 고를 때도 항상 싸움은 반복됐다. “저희는 부모님이 없으니까 누가 ‘우리 애 왜 때리냐’ 이런 말도 안 해요.” 시원씨는 지난 1월에도 폭행으로 구치소에 들어갔다. 지난 5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나왔다. “지옥” 속에서 꿈을 잃은 채 점점 삐뚤어져 가는 사이 손을 내미는 어른은 없었다. “주변에서 응원도 해주고, ‘학원도 다녀봐라, 공부 좀 해봐라’ 했으면 잘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없고 방치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③ 정현그렇게 성인이 된 이들은 어느새 소년원과 구치소 문턱을 드나든 문제아가 돼 있었다. ‘불량한 열여덟 어른’들에게 사회는 냉정했다. 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현(21)씨는 2019년 학교를 자퇴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불법 스포츠토토나 용역이 아닌 정당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알바를 알아봤는데, 최소한 고졸은 돼야 한다는 조건이 너무 많은 거예요.” 석진씨도 할 말이 많았다. “시설을 나오자마자 할 건 없고, 거기 안에서 배운 것도 없어요. 근데 알바 같은 것도 색안경을 쓰고 우리를 안 쓴단 말이에요. 정상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안 뽑아주니까 불법을 하는 거죠.”

김수진(19·가명)씨가 지난달 5일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④ 수진학교 밖으로 나가는 건 꼭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수진(19)씨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한 후 다른 ‘위기 청소년’들과 어울렸다. 2019년 폭력 등으로 소년보호처분 8호를 받고 소년원에 1개월간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은 세대 차이가 나서 집에서 고민을 말하기 어려웠어요. 학교에서도 소속감을 못 느끼니까 밖에서 학교 안 가는 애들이랑 친해지게 됐죠. 같이 어울리면서 다른 애들을 때리고 그러는 게 멋있는 줄 알고, 거기서 소속감도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행동을 되풀이한 것 같아요.”

심유경(19·가명)씨가 지난달 6일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⑤ 유경2018년 학교를 자퇴한 유경(19)씨도 부모로부터 벗어나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사고에 빠지게 됐다. 유경씨는 친구들과 음주, 흡연을 즐기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가족과 사이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학교 밖에서 만난 아이들과 노는 게 재밌었어요. 그러면서도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음주를 하다 보니 주민등록증을 도용하게 되고,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면서 소년분류심사원도 가고, 소년보호처분 6호를 받기도 했어요.” 4개월 동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손을 내밀어 줄 어른을 찾은 후였다. “주변에 진심으로 저를 받아주고, 얘기를 들어 줄 그런 어른 친구가 없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러면 안 되는 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친구들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작공에서 만난 선생님은 다른 어른처럼 ‘너는 양아치야, 소년원에 갔다 왔잖아’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저를 대하지 않았어요. 제 얘기를 하면 저를 이해해줬던 분이었어요. 그때부터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사고를 치는’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된 것 같아요.”
지난해 기준 학교 밖 청소년은 15만명 정도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은 ‘3개월 이상 결석하거나 취학의무를 유예한 청소년’ ‘제적·퇴학 처분을 받거나 자퇴한 청소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을 학교 밖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다시 학업형, 직업형, 무업형, 비행형, 은둔형이라는 칸막이 항목으로 나뉘어 통계로만 존재한다. ‘학교 안 청소년’들이 11월17일 수학능력시험을 향해 달려갈 때, 뒤늦게 학업형으로 돌아선 학교 밖 청소년들은 고졸 검정고시 합격 문턱을 먼저 넘어야 한다. <한겨레> 고병찬 기자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이들과 석달간 함께 한 기사는 한겨레에서 볼 수 있다. ▶‘학교 밖 청소년’과 기자가 함께 한 검정고시 준비 3개월 https://hani.com/u/MjM1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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