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 ⑩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자원봉사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1일 사고 현장 통제선을 제거했다. 연합뉴스
*편집자: <한겨레>는 지난 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32)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김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는다. 사고 당일인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된 김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았다.
그 분들을 만나며 제가 오히려 느꼈던 감정은, 사랑과 오해였어요. 저는 아마도, 아니 솔직히 그 전에는 ‘기자’라는 직업에 형용할 수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은 어디에, 무엇에 관심 있는 걸까요 라며 두 눈을 감게 돼요- 라던 심정이 제가 글을 직접 쓰게 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요. 세상이 그들을 ‘기레기’라는 단어로 조롱할 때,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저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힘듦에 지쳐 고개 숙여 울고 있을때는 모르다가, 어느날 느꼈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기자들도 고개 숙여 사죄하듯 저를 대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들은 저에게 모두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보였습니다. 나만 상처받고 힘든 게 아니라, 이들도 똑같이 피해자라는 것을요. 그들도,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참사 현장에 일찍 도착했고, 기자이기 때문에 현장 상황 파악을 했어야 했을 테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거리에 힘들게 앉아 있는 생존자들, 그들에게 다가가 현장 상황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생존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던 그 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생존자들에게 다가가려고 마음먹어야 했을 때 얼마나 큰 용기와 미안함, 자책감이 들었을까요. 일단 구조하느라 상황이 경찰도 파악이 안되었고, 당시에 있던 저마저도 상황 파악을 뒤늦게 집에 와서 했는데, 그들은 오죽했을까요. 기자들은 그곳에서 같이 충격받고, 같이 울고, 유족을 안고 같이 무너졌습니다. 유실물 센터를 취재하러 갔다던 기자님이 생각나요.
드넓은 공간에 펼쳐져있는 유실물들은 그날의 상황을 하나씩 모두 담고 있는 듯 했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 추스리기도 전에,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현장을 담고, 리포팅을 하고. 카메라가 꺼지면 눈물을 흘리고 오고, 집에 와서는 낮에 봤던 그 현장이 잊혀지지 않아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지 않은 사무실 내 사람들은 자기에게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되어있느냐는 말을 하고,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어 술만 마셨다고도 했어요. 선생님, 이 사건은 아마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내 심정 아무도 모를 거야 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하는 재난인 것 같아요. 내가 아픈 만큼 남들도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중입니다. 우리는 더욱 사랑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인이 이별하는 가장 큰 이유를 아세요? 바로 오해예요.
오해만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해도 헤어지지 않을 수 있지요.
우리 오해하지 말아요, 서로 사랑해야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그동안 기자들을 오해했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네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그렇게 힘들어하냐는 악플을 보았어요.
너는 생존자가 아니라, 목격자인것 뿐이라고 300명의 사상자에 들지도 않으면서 무슨 생존자라고 하느냐는 악플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300명의 공식적인 사상자에는 들지 않지만, 가까이서 구조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 구조자, 목격자, 상인들, 뉴스로 전해 들은 전 국민, 우리 모두에게 상처이고,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것을요.
타인의 죽음을 나의 죽음처럼 깊이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니까요. 우리 서로 오해하지 말아요, 사랑합시다. 기자님들께. 만나 뵌 모든 기자님들, 피디님, 작가님 포함 정말 많은 분들이 어쩜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저에게 하셨을까요.
죄송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면목이 없다는 말. 어쩌면 그대들은 3중으로 상처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을 취재하며 목격자로서 받는 타격과 상처, 생존자와 피해자, 유족들에게 다가가며 받는 상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회의감. 그 와중에도 유족들과 피해자들, 생존자들을 만나며 위로를 해주고 돌아오는 그대들을 보면서,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위로를 얻느냐고. 죄송해 하지 마세요, 고개 숙이지 마세요,
저에게 생존한 것을 미안해하고 자책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셨던 것처럼 그 말을 그대로 제가 그대들에게 해드리고 싶어요.
자책하지 마세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 겨우 수습을 뗀 것 같은, 기자가 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기자님이 생각나요. 이 글을 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생각에 인터뷰 내내 무표정이셨지만, 느껴졌습니다. 손을 떨고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의 참사 현장을 목격한 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보였어요. 당연한 것을 묻고, 당연한 것을 질문해서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어리디 어린 기자님이 안쓰러워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어가는 일인지 알고 있어요. 또 그래야 사니까, 살아야 해서 그런거니까.
우리 전쟁 같은 난리통에 만났네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볼 수 있는 날, 웃으며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때는 꼭 안아드릴게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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