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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아이가 “다녀올게요”하고 돌아올 수 없는 나라라면… [생존자의 기록]

등록 2023-01-27 15:37수정 2023-01-28 00:36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⑰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린 26일 서울 용산구에서 어린이들이 눈을 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전국 곳곳에 눈이 내린 26일 서울 용산구에서 어린이들이 눈을 뿌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편집자: 김초롱(33)씨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입니다. <한겨레>는 김씨가 쓴 당시 상황과 심리 상담 과정, 이후 겪은 트라우마 등에 대해 차례로 싣습니다. 김씨는 사고 당일인 10월 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됐습니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았습니다.

복지센터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센터에서 연결해주신 정신의학과 치료 덕분에 저는 잘 지내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두 달 동안 저를 궁금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화로 말씀드릴 그간 저의 이야기를 긴 글로 대신해 전합니다.

참사 이후, 저는 내가 사는 이 나라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이런 점들이 제게 참 중요해졌달까요.

참사가 있기 전엔 나라에 관심이 없었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 나라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었습니다.
20대 중반, 세상은 바뀔 것이다라는 희망이 있을 때 저는 시사방송도 했었고, 시사 책도 냈었던 적이 있었지만
한 5년정도 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참,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구나.
2018년 방송에서 이런 멘트를 직접 쓰고 읽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성수대교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씨랜드 화재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까지. 우리 사회는 지난 몇 십년간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 같지만, 그다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 안전에 대한 사고였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매번 그때마다 피로 쓰여진 법률 제정과 안전 규칙들. 그렇다면 언제까지 피로 쓰여져야 할까.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학교를 한창 다니던 그 해, 2014년
세월호가 뒤집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뉴스로 지켜보고,
그 이후 몇년간 모든 것이 뼈아픈 정쟁으로 남아 전국민에게 생채기로 남았던
그 시간을 보면서 저는, 더이상 나라에 관심이 없어져갔던 것 같아요.

희망이 없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보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싶다고 해야할까.
이럴 거면 그냥 나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소모적이기만 하고, 공격받을 일들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저를 지배하고 죽은 듯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냥 나만 잘 되자. 돈 되는 일만 하면서 살자”
방관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가장 편한 길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던 방송도 긴 휴지기를 갖겠다고 선언하고, 쓰던 글도 그만 두었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마음 먹었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참사 현장에서 살아나오게 되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상과 사회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되었어요.

덕분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이후로 누구보다 열심히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청회에 다녀온 이후, 저는 이상한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여당 의원들의 진심어린 눈빛이 그래도 무언가 달라지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빛을 봤던 것 같아요. 기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분명히 약속했는데, 최선을 다해서 유족분들의 마음과 생존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거기에 저는 분명히 트라우마의 유일한 치료 방법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일 뿐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직접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후 국정조사 보고서 채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또 한번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이상민 찍어내리기에 불과한 국정조사 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

제가 여당 의원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느낀 대표적인 인물,
내 앞에서 같이 울었고, 유족들 곁에 와서 위로를 하기도 하던 여당의 그 의원이
‘국정조사 보고서 자체가 모든 책임을 윤석열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보고서’ 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사는 이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진술인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진술인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군중밀집 관리였고,
군중밀집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에 앉은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진상규명의 첫 단계일 뿐인데.

이것을 이상민 찍어내리기, 정부 책임으로 다 돌리려는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당리당략이 우선시되는 집단행동을 목격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안건에 대해서 여야 합치가 안 되는 것은 이해해도,
이 참사에서만큼은 논의가 필요없는 하나 된 태도가 필요했다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야 합치가 이뤄지는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이에요.

나라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아져 갑니다.
공청회 현장이 자꾸 생각나요.

인상적이었던 두 명의 국회의원, 거대 여당과 야당 소속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일하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해요.
휴정시간에도 자리를 1분도 뜨지 않고, 열심히 질문거리를 만들고
발표 내용 원고를 수정하고, 쉬지 않는 타자 소리와 내려가지 않는 어깨,
모니터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두 의원의 얼굴들.

유족과 생존자들 앞에서 진심으로 펑펑 울고,
참사 관련 부조리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강인하던 모습들.
든든했습니다.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모습이,
그 숨막히는 공청회 자리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두 의원이었어요..

한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았던, 소수정당.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원하는 사회 메세지는 무엇일까.
이렇게 진심으로 정치를 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라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라는 것은 믿을만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아픈 마음으로,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2일 오후 국회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는 유가족 8명과 생존자 2명, 지역 상인 1명 등 11명이 참석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12일 오후 국회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는 유가족 8명과 생존자 2명, 지역 상인 1명 등 11명이 참석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

선생님 : 불안증 약을 이제 서서히 줄여가 볼까요?
요즘은 어떤 것이 가장 불안하다고 느끼세요?

나 : 일상이 갑자기 날아가 없어져 버릴 것 같다거나,
갑자기 모두가 죽을 것 같다거나 그런 트라우마적 불안은
많이 나은 것 같아요. 그런데 불안함을 조금 더 넓게 생각하게 됐달까요.
세월호 아이들이 그렇게 하늘로 가버렸을 때, 나라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선생님, 이런 생각이 이해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때 이미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본능적인 생각이었어요.
나의 아이도 어느 날 갑자기 “놀러갔다 올게요”하고 나갔다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가서 ‘다녀왔습니다’하고 돌아올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상을 지켜 줄 수 있는 나라인가. 자꾸 스스로 되물어요.

그리고 참사를 겪은 지금, 꽃같이 곱고 소중한 아이들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어요.
다시 한번 또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라의 불안전을 내 아이에게 전해줄 수 없거든요,
지켜줄 수 없는 나라라면 아예 세상에 데려다 놓지 않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책임감 아닐까.

나라에 관심이 많아진 이후로, 많은 기사들을 열심히 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2023 저출산 계획과 예산안에 대해 접했습니다.
예년보다 1조가량 예산을 더 많이 편성했다는 내용과 각종 지원금 정책들이 대부분이네요.

저출산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아요.
예산안을 얼마나 투입하고 정책지원금을 얼마나 더 주느냐 문제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거든요. 그 종합적 관점의 시작점이 바로, 안전 관련 이슈예요.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갑자기 하늘로 간 참사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도 못하는 정부가 출산을 독려할 자격이 되는가,
내 아이를 낳아도 된다고 믿으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인가.

저출산 대책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관리 예산을 이렇게 더 많이 편성했다,
경찰 인원을 이렇게 늘렸다, 각종 사각지대에 CCTV를 늘리겠다.
앞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는 철저하게 원인 규명과 책임 당사자 처벌을 기본 원칙으로 하겠다.
이런 내용이 포함되었더라면,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꿈을 조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깊어지지 않도록, 불안을 조금은 잠재우도록 아직은 약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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