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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 연대는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생존자의 기록]

등록 2023-01-11 08:00수정 2023-01-27 17:32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 ⑭
지난해 11월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역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이태원과 희생자를 위해 남겨진 메시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역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이태원과 희생자를 위해 남겨진 메시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 <한겨레>는 지난 6일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33)씨가 당시 겪었던 상황과 이후 심리 상담 과정 등에 대해 들었다. 김씨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상담기록과 일지 등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차례로 옮겨 싣는다. 사고 당일인 10월29일 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인파에 휩쓸렸지만, 행인이 난간으로 끌어올려 가까스로 구출된 김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았다.

선생님, 크리스마스와 연말 맞이 휴가를 잘 보내고 돌아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원도 심리 상담사 선생님도 모두 12월 연말은 1~2주가량 휴지기를 갖는다는 소식에 난생 처음 12월 한달 분량 약을 처방받아 돌아오면서 터질 것 같은 약봉지가 어쩐지 서글펐습니다. 휴가 전 마지막 상담에서 제게, 아직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수만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만 꼽자면 무엇이냐고 물으셨지요.

저는 여전히 제가 ‘참사 생존자'가 맞냐고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습니다. 300여명의 사상자 숫자에 카운트되지는 않지만, 그날 그 사건을 겪고 보고 집에서 뉴스로 들은 우리 모두가 참사 생존자라고 글에서도 몇번을 외치고 썼지만. 속으로는 사실 소화가 다 되지 않았나 봅니다.

운 좋게 빠져나왔지만 그 현장에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던 내가, 모두 흥겨운 분위기에 놀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그 상황에 사람이 소리 지르며 죽어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내가 왜 이렇게 아파하나,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아파하나. 너는 유족도 아니고, 옆에서 친구가 죽어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도 아니며, 바로 맨 밑에 깔려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도 아니지 않니? 스스로 매일 묻는 말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나는 힘들만 한 상황에 있었고 나는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이해하고 있지만, 선생님께도 여러 차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기분을 반복 설명하는 것도 자꾸만 스스로 지쳐갔습니다. 선생님도 혹시 자꾸 반복하는 이런 내게 질리시거나 지치게 해드려서 또 다른 피해를 주면 어쩌지. 그렇다면 나는 어디 가서 무얼 하며 진짜 풀어내고 건강해져야 할까. 이러다가 “미안하지만 선생님은 결국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해버리면 어쩌나.

그러던 어느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고. 이런 정신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정중하게 거절했던 찰나, 다른 번호로 해당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라고 밝히며 다시 한 번 연락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메인 작가 도미라입니다. 참사 이후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드실 텐데,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른 작가를 통해서 인터뷰 고사하신 이유를 잘 들었습니다. 실례가 되겠지만 진심으로 한 번 더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저희 <뉴스공장>은 참사 이후 현장 출동 소방관, 이태원 주민, 유가족 등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를 인터뷰로 전달했습니다. 그런데도 초롱씨 인터뷰를 부탁드리는 배경은 저희 청취자층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방송을 듣고 보시는 분들은 주로 40대 이상의 택시기사, 버스 기사, 출근길 직장인과 학생분들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기사를 보시곤 하지만, 인터뷰이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는 건 회사를, 학교를 오가는 1~2시간 정도입니다. 저희는 그 시간 안에 초롱씨의 목소리를 많은 분에게 꼭 들려드리고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생존자를, 유족들을 어떻게 대하고 변화해야 할지 스스로 묻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음 해가 돼도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으로 갈 거라는 말씀, 일상을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말씀, 많은 분에게 응원이 되고 힘이 됐습니다. 저희 방송에서도 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절대적인 지지 그 이상이 필요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고 저의 편이고, 저를 위해 애를 무척이나 쓰고 계시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쩐지 저는 자꾸 외로웠습니다.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로 많이 호전된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서 노력하면 무엇할까요, 매번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아픈 말들과 전혀 바뀌지 않는 사회가 근본적인 아픔을 나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닿기를, 그리고 그 사람의 치유가 나의 치유가 되는 일 말고는 그러니까…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피해자들의 연대일까요. 저는 그냥 그저,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인 작가님의 문자를 받고,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는 그가 한 방송사에서 외친 수상소감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압박으로 프로그램이 없어진다 해도, 이름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라도 돌아올 프로그램으로 만들 것이다’

내게는 이런 단단한, 어른이자 세상을 함께 바꿔갈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을 만한 어른이 있다고, 세상 어딘가에는 많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인터뷰를 하는 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왜 이렇게 아파하는지 왜 자꾸 참사현장에 가게 되는 것일까요, 왜 초롱씨가 미안해하는지’라는 질문에 “사람이니까…”라는 답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참사현장에 있던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저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112에 최초로 참사 신고를 했다던 분과 통화를 하던 순간, “안녕하세요. 김초롱입니다”라는 말에 인사도 못하고 목놓아 우는 그분의 울음을 10분간 듣고 있었지요. 그리고는 첫 전화통화로 심리상담을 받던 날, 내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도 그렇게 선생님의 전화를 붙들고 아무 말 못하고 펑펑 울었지요.

“초롱씨 저는 112에 최초로 저녁 6시쯤 신고를 했던 사람이지만, 신고 후 바로 현장을 떠났어요. 참사가 있던 시각에 있던 사람도 아니고, 일찍 떠나서 집에 잘 갔는데도. 저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그날 같이 이태원에 갔었던 저희 남편과 딸은 잘 회복해서 이제는 일상을 잘 사는데 왜 저는 시간이 갈수록 힘든지. 참사 이후 왜 딸이 영화 보러 나간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내 딸이 나갔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면 어떡하나 싶은지. 영화관이 무너질지, 영화관이 불이 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왜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변하는 것은 없는가. 모든 게 이해되지 않고, 왜 초롱씨 목소리를 듣는데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겠어요. 다 이해가 안 가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 그분께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참사 생존자이며, 피해자이니까요” 저도 울고, 그분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피해자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저를 위로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출연했던 인터뷰가 퍼져나가고, MBC <스트레이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공중파 TV 출연은 무섭다고 거절했지만, 참사 이후 생존자와 유족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이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 그 분들 모두 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이 출연한다고 하면, 본인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방송되고, 더 많은 유족분이 저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청문회입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중, 어느 한 명도 찾기가 힘들어지고 나서서 돕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많이 아프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문회는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저마저도 저 스스로 야속해지더군요. 우리나라 국민 6000만명, 그중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생존자 및 목격자 추정 10만여명. 참사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겪지 못한 특수한 경험이자, 소수 몇 퍼센트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 고통스러워 하는 일입니다.

‘내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것이다’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마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내고자 개인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되지 않으면 절대 그 고통과 멍울이 낫지 않는 끔찍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심리 상담사가 있어도, 참사를 이겨낼 확실한 방법은 진상규명이어야 하는 이유예요.

최근 보았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피해자의 연대가 더 셀까, 가해자의 연대가 더 셀까” 그러게요, 저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사실 어떤 연대가 더 센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피해자들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니까요.

그 이유는, 살고 싶어서. 살아내려면,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나를 절대적으로 이해해주는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살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우기 바쁜 가해자의 연대보다 더 셀 리가 있을까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청문회에 참석해 유족을 돕기로 했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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