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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촌 모녀’ 숨진 원룸, 냉장고엔 케첩·고추냉이·물뿐…

등록 2022-11-25 16:27수정 2022-11-26 22:52

쌀 2인분만 남아 있어…밥솥 쓴 지 오래
건보료 1년 이상, 월세·통신비·전기료 연체
‘위기가구’지만 지자체 거주지 파악 못 해
25일 모녀가 숨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다세대 주택. 현관엔 5개월 미납을 알리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붙어있었다. 채윤태 기자
25일 모녀가 숨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 다세대 주택. 현관엔 5개월 미납을 알리는 전기요금 고지서가 붙어있었다. 채윤태 기자

건강보험료 등을 연체해 위기가구 대상으로 발굴된 모녀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8월 발생한 ‘수원 세모녀 사건’처럼 위기가구 대상이었지만,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달라 구청에서 모녀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숨진 채 발견된 이튿날, 정부는 뒤늦은 대책을 내놓은 상태였다.

25일 경찰과 보건복지부 설명 등을 종합하면, 지난 23일 경찰은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갔다가 숨진 어머니(65)와 딸(36)을 발견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앞서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모녀가 동시에 건강보험료 1년2개월, 통신비 6개월을 연체하고, 딸은 이와 별개로 카드비 등 금융 관련 비용 납부를 7개월 밀린 사실을 확인하고 위기가구 대상으로 발굴했다.

이후 모녀의 주민등록 주소지가 있는 서울 광진구청은 지난 8월 두 차례 이들의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정작 모녀를 만날 수 없었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11월 서대문구로 이사한 상태였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소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한겨레>가 모녀가 살던 서대문구 원룸을 찾았더니, 집주인 의뢰로 나온 청소업체가 이들의 집을 치우고 있었다. 문앞에는 ‘5개월 미납’을 알리는 지난 9월 전기요금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집안 신발장 위에는 “월세가 많이 연체돼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방을 비워주세요”라는 집주인 편지가 놓여있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45만원에 계약된 원룸이었다. 집주인은 모녀가 6개월가량 월세를 연체하고 있었다고 했다. 집안 책상에 놓인 월세 송금 은행영수증도 지난 5월 중순에 납부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들의 세간살이는 단출했다. 24㎡(약 8평)도 되지 않는 원룸에는 화장실이 하나 딸려있었고, 매트리스·책상·냉장고·싱크대 정도가 전부였다. 작은 옷장에는 옷 10여벌 정도만 걸려 있었다. 책상엔 영어 참고서 2권과 모기약, 화장할 때 쓰는 스펀지와 브러쉬 등이 남겨져 있었다. 현관에는 신발 두켤레, 싱크대엔 칫솔 2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냉장고에는 빈 그릇과 컵, 고추냉이, 케첩과 물뿐이었다. 쌀봉투엔 2인분 분량만 남겨져 있었다. 전기밥솥이 있었지만, 전선을 정리해 밥솥 안에 넣어둔 것으로 보아 사용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이밖에 먹을 것이라고는 믹스커피뿐이었다.

서대문경찰서는 이들 모녀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요청한 상태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죄 혐의점 및 유서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전날(24일) 발표한 대책을 재차 언급하면서 “서대문구 모녀 사망 사건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통신사가 보유 중인) 연락처 연계 등 관련 법률(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른 대책들도 관계부처·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하여 대책을 차질없이 이행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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