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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제노역’ 시키면서 요건·절차도 듬성…업무개시명령 쟁점 셋

등록 2022-11-30 17:14수정 2022-11-30 21:14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 초래’ 요건 충족됐는지
공시송달 효력 14일→3일 단축 등 소송서 따질 듯
헌법·ILO 협약서 금지하는 강제 노역 해당될 수도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 시민사회단체가 30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파업 중인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고 관련 절차를 밟자, 노동계와 법조계에서는 ‘강제 노동’의 위헌성뿐만 아니라 법에서 정한 발동 요건과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등 위법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업무 종사자들에게 법률을 통해 강제로 업무를 개시하도록 하는 제도는 의료법·약사법(1994년 도입),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2004년 도입)에 존재한다. 모두 대규모 파업을 거친 뒤 마련됐다. 제도 도입 당시부터 국민(환자) 생명과 건강을 위해 면허제로 운영되는 의사·약사와 달리, ‘국가경제 위기 우려’라는 추상적 근거로 화물차 운전자의 집단행동을 제한·처벌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화물차 말고도 대체 운송 수단이 있는 점, 비행기·기차·선박 등 유사 직군에는 업무개시명령제도가 없는 점도 함께 지적돼 왔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는 우선 업무개시명령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업무개시명령이 ‘요건’을 갖췄는지, 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절차’를 지켰는지가 쟁점이다. 파업 일주일째를 맞는 화물연대 파업이 정말로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인지, 개별 화물차 운전자가 고유가(기름값)·고금리(차량 할부금), 차량 고장, 건강 문제 등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는 ‘정당한 사유’는 없는지 역시 따지게 된다.

업무개시명령이 효력을 가지려면 명령서가 파업에 동참한 화물노동자나 가족 등에게 송달돼야 한다. 정부는 명령서 수령이 늦어질 경우 관보나 일간지에 명령서를 게재하는 ‘공시송달’을 통해 법으로 정해진 송달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시송달은 명령서 게재 14일 뒤 효력이 발생하는데, 정부는 행정절차법의 ‘긴급히 시행할 특별한 사유’를 들어 이 기간을 3일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법률단체 쪽은 파업 전후로 대화와 교섭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송달만 서두르는 것은 ‘강제 근로’의 전제 조건으로 행정절차법이 정한 기본 절차를 무력화하는 위법 행위로 본다.

류재율 변호사(법무법인 중심)은 “업무개시명령을 하려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존재할 것을 요하는데, 현재 상황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 조항 자체의 위헌성도 중요 쟁점이다. 법조계에서는 업무개시명령을 어기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과 행정제재(화물운송 종사자격 취소)를 받기 때문에 헌법, 근로기준법, 국제노동기구 협약이 금지하는 ‘강제 노역’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많다. 업무개시명령 발동 근거 역시 ‘정당한 사유’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 등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해 헌법의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2004년 제도 도입 뒤 18년만의 첫 발동인 만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을 다퉈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30일 “기본권을 제한하고 형사처벌까지 하는 법규정은 명확해야 하는데, 화물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 해당 규정은 표현이 모호해서 이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노동 사건을 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화물노동자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인데, 이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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