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윤씨가 만든 그림책 자서전을 들고 있는 아버지 차기님씨. 차정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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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2년 새 가족을 알아가는 자서전 문답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자서전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긴 글을 쓰지 않더라도 ‘부모님 문답’이나 ‘부모님 탐구영역’처럼 각자 자신만의 형식으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의 자서전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림책을 만들어온 차정윤(28)씨는 지난 11월 아빠를 위한 그림책 자서전을 만들었다. 올해 초 퇴사한 이후 은퇴한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버지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그리는 자서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10쪽짜리 책엔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중학생 시절 아빠와 진급 경쟁에 시달리며 술 취해 퇴근하던 아빠의 인생이 짧은 글과 함께 그려져 있다. 차씨는 “아빠가 가부장적인데다 잔소리가 심해 아빠의 말은 귀 막고 살아왔다. 아버지 자서전을 만들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 자서전이 아빠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들고 보니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림책을 선택한 건, 나중에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 보여주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본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을까? 차씨는 “아버지가 ‘10쪽으로는 내 인생을 담을 수 없다’며 직접 콘티를 작성할 테니 양을 더 늘려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된다. 차씨가 지난 10월 연 그림책 자서전 제작 강의 땐 3040 수강생들이 펜과 색연필로 서툴지만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이소현씨가 만든 부모님 자서전. 이소현씨 제공
인터뷰 대상자 맞춤형으로 문답집을 직접 만드는 방법도 있다. 2020년 어버이날 기념 자서전을 직접 만든 양지운(25)씨는 “시중에 파는 책은 질문이 제한적이었다. 평소 묻고 싶었지만 낯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질문 위주로 구성해 부모님한테 드렸다”고 말했다. 양씨가 평소 차마 하지 못했던 질문은 ‘할머니에게 가장 큰 잘못이 뭔가’ ‘내가 자녀를 낳으면 어떨 것 같나’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같은 질문이다. 반겼던 엄마도, 숙제를 던져줬다며 귀찮아했던 아빠도 모두 빈칸을 채웠다. 양씨는 “자서전을 보면서 가족이 대화를 나눠볼 계획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지운씨가 2020년 어버이날을 기념해 직접 만든 부모님 자서전. 양지운씨 제공
짧은 글마저 부담스럽다면 사진 40~50장을 골라 타임라인 형태나 이벤트별로 모아 사진 아래 짧은 설명을 넣거나, 휴대전화의 영상 앱을 이용해 영상 자서전을 만들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질문지를 작성하면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사회적기업 ‘마인드레인’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복지관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하는 김미진(45) 디지털 라이프 코치는 “어르신들이 글은 어려워해도 영상은 쉽게 배우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대화를 통해 만드는 것. 이때 주의할 점은 있다. 차씨가 알려주는 팁은 “일단 참고 들어라”이다. 차씨는 “인터뷰 중에 참견하고 싶고, ‘그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때 참아라”라고 말했다. 참지 못했던 차씨는 인터뷰 도중 아버지와 싸워 결국 아버지로부터 “자서전 만들지 마”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귀띔했다.
2022년을 마무리하는 연말, 그동안 각자의 인생을 점검하고 반추하며 자신만의 자서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나와, 가족과, 지인과 화해할 좋은 기회가 될 테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