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지난 25일 저녁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앞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미사가 열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공동기획으로 희생자 가족, 생존자,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함께 10월29일과 그 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마련합니다. 재난을 먼저 겪은 이들과 인권·재난전문가들이 곁이 되겠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줄 생존자, 구조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채널(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전자우편(1029dignity@gmail.com), 유선전화(02-723-5300)
저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봄을 기억하곤 합니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고 따스한 봄바람이 스며들면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햇빛이 더 찬란해지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면 일상의 얼굴 아래서 밀려오는 애도와 트라우마의 아픔들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등학교에서 스쿨닥터로 2년간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질문합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은 이제 잘 지내냐고요.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사람들은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을 재난 피해자 혹은 생존자라는 이름을 통해 바라봅니다. 상처 입고 트라우마 증상에 시달리고 애도에 슬퍼하고 때로는 망가져 버린 삶,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힘들어서 어떡하냐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재난은 끔찍하고 고통시간을 주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재난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재난의 흔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쉽지 않지만 그 와중에 내 삶을 위한 노력을 놓지 않고, 때로는 나를 돌보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시간을 내내 견디며 버티며 보내지만 어느 순간 견디는 능력도 같이 자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당장의 소중한 오늘의 의미에 집중하게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같은 재난은 없습니다. 우리가 재난 경험자들을 섣불리 판단하고 경험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지요. 심지어는 같은 재난 안에서도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합니다. 누군가는 친구를 놓쳐버린 것이 가장 아픈 부분이고 누군가는 물속에 가라앉았던 경험이 누군가는 기울어지는 배에서 날아갔던 경험이 가장 끔찍한 부분입니다. 하물며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고 각자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재난을 경험했다고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고 그렇게 규정 지어지고 때로는 비난받거나 때로는 동정받거나 때로는 낙인화하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무지한 행동이지요.
당신이 그 좁은 골목 어딘가에 있었든 전후에 가까스로 빠져나왔든 혹은 목격했든 누군가를 구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든 그리고 혹은 같이 있던 누군가를 잃었든 누군가를 놓쳤든, 아마도 당신은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날도 있고 생각보다 더 어려운 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혹은 괜찮은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당신의 삶을 존중합니다. 재난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 추슬러 나가는 당신을 존중하며, 때로는 그저 그 시간을 견뎌 내는 당신을 존중하며, 때로는 그 한가운데 그저 놓여 있는 당신의 삶을 존중합니다. 재난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곁에 있는 당신의 삶을 존중하고 감사합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생존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세월호, 이태원…. 재난이 빈번한 시대에 재난의 위협과 무력한 슬픔 안에서도 오늘을 또 무사히 나쁘지 않게 살아내는, 저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지금 누군가 온전히 나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혼자 감내하고 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이미 누군가에게 당신의 힘듦을 위로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당신이 준비되었다면 함께 나눠요. 슬픔과 무력감과 참혹함에 침잠되어 있는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끝에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당신의 뒤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함께 연민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우리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곁을 준다면요. 우리는 당신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참혹하지만 빛나는 당신이 있는 이 시대 안에서요.
2022년 12월29일
김은지 드림
마음건강센터-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