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을 경찰이 통제하는 가운데, 119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10월30일 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보다 먼저 ‘피해자’ 등의 용어 단어 대신 ‘사망자’라는 용어를 쓰라고 지시한 사실이 29일 확인됐다. 앞서 중대본의 용어 통일이 참사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바 있는데, 서울시도 참사 희생자를 ‘사망자’나 ‘부상자’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 다른 용어 사용을 삼가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태원 참사 명칭도 ‘인명사고’라고 통일하며 ‘압사’ 등 용어 사용의 여지도 막았다.
<한겨레>가 윤건영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위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 주요간부 모바일 상황실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30일 오전 9시33분 김아무개 서울시 기획담당관이 “동사고 지칭이 다양한데 일단 [용산 이태원 인명사고]로 통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사망자, 부상자, 사상자로 용어 사용을 해주시고 기타 다른 표현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초 용어 통일은 10월30일 오전 10시에 열린 중대본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본은 회의를 통해 사고 명칭은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를 쓰라는 지침으로 정했고 이를 각 기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대본의 지침 전달에 앞서 이태원 참사 수습을 담당하는 서울시도 이같은 용어를 통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10월30일 서울시 주요간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모바일 상황실)에 공유된 메시지 내용.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서울시 쪽은 10월30일 새벽 2시(1차)와 3시9분(2차), 7시(3차) 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재대본)를 진행했고, 당시 회의에서 나온 얘기를 모바일 상황실에 전파했다고 설명한다. 김의승 행정1부시장 주재로 열린 재대본 회의에는 서울시 주요간부들이 참석했다. 모바일 상황실에 메시지를 남긴 김 기획담당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나 ‘희생자’라고 하면 사망을 한 건지, 다친 건지 초기 상황을 파악하는 데 혼선을 준다(고 봤다)”며 “사상자들의 숫자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망자’와 ‘부상자’를 명확히 구분해달라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외 출장 중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시였냐는 질문에 김 기획담당관은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이야기하거나 한 것은 아니고 재대본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답했다. 또 10월29일 새벽 2시44분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주재 중대본 회의에서 논의된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것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기획담당관은 “(용어 통일은) 서울시 차원의 판단이었을 뿐이고, 이를 (용어 통일 지침이 정해진 오전 10시) 중대본 회의에 건의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서울시가 10월30일 오전 7시 재대본 3차 회의를 마친 직후 배포한 보도참고자료를 보면, ‘사망자’라는 표현만 있다. 같은 날 오후 12시23분 주요간부 모바일 상황실에 박아무개 언론담당관이 공유한 자료에 ‘피해자’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자 김의승 행정1부시장이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해주세요. 사상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선택적인 용어 사용을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0월30일 오후부터 대통령실이나 정부의 이태원 참사 관련 브리핑에서 ‘압사’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참사 수준의 사고”라고 표현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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