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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마는 아직 너 보러 서울 가, 그날의 진실에 가닿으려 매주 가

등록 2023-01-09 15:34수정 2023-01-11 13:46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⑫김산하
밥솥까지 챙겨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엄마가 들은 믿지 못할 소식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기에” 엄마는 앓아눕더라도 매주 서울로
김산하(25)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김산하(25)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2022년 7월, 강원도 강릉의 여름은 예뻤다. 첫딸 산하(25)가 처음 계획한 가족 여행이었다. 엄마 신지현(51)씨와 아빠, 반려견 ‘도토리’가 함께했다. 회사에 다닌 지 갓 1년이 넘은 산하는 그곳에서 10년 계획을 발표했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특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영어교육 회사에 다닌 산하는 외국 연수를 다녀와서, 언젠가는 어릴 때부터 꿈꿨던 영화 배급회사에 취업할 생각이었다. “10년 뒤에는 창업해서 무척 바쁠 것”이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그땐 엄마 아빠의 빚도 다 갚아주겠다”고도 약속했다. 엄마도 웃고 아빠도 웃었다. “부산에서 같이 살 때는 철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여행 가서 보니까 어른이 다 됐더라고요.” 엄마는 딸이 꿈꾸는 10년의 미래를 응원했다.

기분 좋을 때면 엉덩이를 실룩이며 달려오던 딸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엄마는 딸이 다시 그리웠다. “엄마가 딸 보고 싶어. 부산에 와라.” 10월1일부터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연휴에 산하는 엄마와 울산 국제정원을 향했다. 연어와 은어가 살고, 백로와 고니가 찾는 태화강이 굽어 흐르는 정원에서 엄마가 말했다. “동생 제대하면 돈 모아서 제주도 가자.” 산하도 좋다고 했다. 10월 말 군에서 제대하는 동생과 함께, 이번엔 가족 ‘완전체’로 여행을 갈 생각에 엄마는 들떴다. “애들 크고 나서는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갔거든요. 산하가 신나 했는데….”

산하는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속정이 깊은 아이였다. 좋은 책이 있으면 “이 책 괜찮아” 하면서 엄마 앞에 무심히 툭 내려놓는 스타일이다. 엄마에게 뜬금없이 전화해 요리 방법을 묻는 일도 잦았다.

2022년 10월14일 저녁 7시12분, 산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뚝배기에다가 김치찌개 해먹을 건데, 뚝배기에다 기름 해가지고 볶아도 돼?” 7분 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현미 이거 쌀이랑 비율 어떻게 해야 해?” 레시피만 묻고 뚝 끊는 전화에도 엄마는 서운하지 않았다. 산하는 그렇게 만든 요리를 사진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파스타, 김치찌개, 돈가스덮밥…. 하나같이 잘 차린 밥상이었다. 외지에서 밥이나 제때 챙겨 먹을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산하는 그렇게 자신의 안부를 사진으로 전했다.

산하는 아빠의 유일한 술친구이기도 했다.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는 엄마나 동생과 달리, 산하는 종종 안줏거리를 사와서 아빠와 술잔을 기울였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엉덩이를 실룩이며 엄마에게 달려오기도 했다.

김산하씨가 엄마 신지현씨에게 보낸 요리 사진. 유가족 제공
김산하씨가 엄마 신지현씨에게 보낸 요리 사진. 유가족 제공

영화를 좋아했던 산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수입하는 배급사에 취직하고 싶어 했다. 엄마는 “제목을 들어도 금방 까먹는” 프랑스 영화에 산하는 특히 애착이 많았다. 프랑스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싶었던 딸을 가정 형편 탓에 유학 보내주지 못한 것이 엄마는 늘 마음에 걸렸다. 잊은 줄 알았던 꿈을 여행 때 다시 말하는 산하를 보며 엄마는 ‘내가 아이의 발목을 잡았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김산하씨가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 유가족 제공
김산하씨가 오스트리아 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 유가족 제공

다시 생각나는 말 “허망하게 안 죽어”

하지만 산하는 스스로 꿈을 일굴 수 있을 만큼 심지가 굳은 아이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자마자 산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어느 날 늦게 들어온 손님에게 식당 마감이 밤 9시30분이라고 안내하고 나서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는데, 그 안내를 언짢아하던 ‘진상’ 손님이 “밥 먹고 있는데 뭐 하냐”고 소리쳤다. 손님은 막무가내였다. 산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이 일을 하소연하며 울었다. 엄마는 그날로 산하가 일을 그만둘 줄 알았다. 그런데 산하는 다음날 꿋꿋하게 출근했다. 산하는 대학 내내 생활비를 모두 벌어서 썼다. 뭐든지 똑부러지게 잘해서 엄마의 손이 갈 것 없는 딸이었다.

그래도 산하가 인천에 있는 직장에 취업해 2020년 5월부터 떨어져 지낸 뒤로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몇 달 뒤 서울로 직장을 옮긴 산하에게 엄마는 말했다. “살살 다니고 코로나 조심하고.” 습관처럼 꺼내는 말에 산하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서울 너무 재밌어. 허망하게 안 죽어.”

2022년 10월29일, 엄마는 일찍 잠들었다. 잠들기 직전 이태원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딸이 그곳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다음날 오전 10시께, 엄마는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산하 전화를 서울용산경찰서에서 받아.” 아빠가 말했다. 산하가 이태원에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엄마는 산하가 어디 다쳐서 누워 있을 거라 믿었다. 엄마는 요즘 들어 밥맛이 없다는 딸에게 주려고 했던 밥솥까지 챙겨서 아빠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 고속도로 위에서 엄마와 아빠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산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날 벌어진 일을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경기도 부천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누워 있는 딸을 보고 아빠는 “우리 아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산하의 발밑에 있던 옷가지는 딸의 것이 맞았다. 아빠는 의사에게 “심폐소생술은 했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의 검안서에 적힌 사망시각은 2022년 10월30일 0시. “그 시각에 숨진 것이 맞냐”고 물었더니, 돌아가신 분들은 일괄적으로 0시로 적었다고 답했다. 그날 이태원에 함께 갔던 친구도 산하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인파 속에서 헤어졌고 산하가 그 해밀톤호텔 옆 골목으로 떠밀려갔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김산하씨의 회사 동료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산하씨가 생전에 사용하던 책상에 국화꽃을 놓았다. 유가족 제공
김산하씨의 회사 동료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산하씨가 생전에 사용하던 책상에 국화꽃을 놓았다. 유가족 제공

왜왜왜… 대답 없는 질문들

엄마 아빠의 머릿속에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날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오후 6시34분부터 있었는데, 왜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을까. 경찰은 살아보려고 차도로 내려온 인파를 누구를 위해 인도로 밀어 올렸을까. 왜 경찰은 인파를 통제할 인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그날 참사 현장에 있던 물통 등에 대한 마약 검사는 왜 했을까.

명확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는 2022년 11월부터 매주 부산에서 서울로 향한다. 부산에 있을 땐 느끼지 못하다가 서울에 가면 딸의 부재를 실감한다. 서울행 열차표를 끊을 때부터 힘들고 서울에 다녀와서도 이틀은 앓아눕는다. 그래도 엄마는 이젠 딸이 없는 그곳에서, 딸이 부재한 이유를 밝히려 한다.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그날의 진실에 가닿으려 한다. “저는 우리 아들을 지켜야 하잖아요. 제가 낳지 않았어도 많은 아이들이 있잖아요.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되잖아요.”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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