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스타그램은 2022년 10월21일에서 멈췄다. 여행을 좋아했던 스물아홉 살의 오근영은 제주, 강릉, 부산, 안동, 통영, 대관령 등 전국 곳곳의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남겼다. 그가 2022년 10월29일 안전하게 축제를 즐겼다면 이태원 사진도 “나만의 #여행일기”라는 글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실렸을지 모른다.
홀로 돌아다니기만 좋아했을 거 같지만 가까이 살던 작은누나 오선영씨와 조카도 살뜰히 챙기는 동생이었다. 선영씨는 “작년(2022년)에도 주문진이나 강릉 같은 곳은 두 번이나 같이 여행을 갔어요. 코로나19가 끝나고 일본이나 해외여행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여행을 떠나지 않은 주말엔 근영은 작은누나, 조카와 함께 삼겹살을 구웠다. 삼겹살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카페모카를 마시는 것은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이었다. 선영씨는 “애를 키우느라 힘들었던 저를 동생이 돌봤다”며 “친한 남매도 많지만 저희도 남다르게 친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충남 아산의 작은누나 집 근처에 자기 방을 얻은 근영은 출근길에 들러 “오늘 옷 입은 거 괜찮냐”고 안부를 묻고 가기도 했다. 근영은 남편과 아빠를 일찍 잃은 작은누나와 조카를 걱정해 “항상 제 반경 안에 계속 있었다”고 선영씨는 전했다.
근영은 대학(토목과) 졸업 뒤 회사에 들어가 측량 관련 일을 했다. 새 도시를 개발할 때나 건물을 지을 때 땅을 재고 시청에서 허가받는 일 등을 했다. 재고 자르는 일을 성실하게해서인지 정리도 잘하고 계획성도 있었다. 한 달치 계획을 짜놓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갈 때도 도맡아 계획을 짰다. 옷을 색깔별로 정리해놓는 등 집은 항상 깔끔했다. 누나가 잠깐 집을 방문한 것도 금방 알아차렸다. 정리가 덜 돼 있는 누나 집에 가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잔소리했다.
근영이 로또를 매주 5장 또는 10장씩 샀던 것은 탈출구를 꿈꿨기 때문인지 모른다. “거창한 꿈에 대해서는 못 들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다”는 누나는 장례를 치른 뒤 동생 친구들을 만나고서야 근영이 ‘나중에 아파트로 이사해서 누나, 조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는 걸 전해 들었다.
소박했던 일상은 2022년 10월29일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를 받은 뒤 깨졌다. 그날 밤 선영씨가 아는 언니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연락처도 모르고 지냈던 근영의 여자친구로부터 다급한 메시지를 받았다. ‘언니 큰일 났어요. 전화 좀 해주세요.’ “동생이 3주 전 계획을 말해줘서 그날도 여자친구와 같이 이태원에 놀러가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선영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빠 쓰러졌어요. 오빠 죽은 거 같아요’라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너무 주변이 시끄러웠다. 처음엔 장난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급히 서울로 향해 새벽 1시쯤 도착한 이태원은 아수라장이었다. 반대쪽 골목에선 여전히 축제 분위기인데, 그 반대쪽 골목엔 구급차와 경찰차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경찰들이 막았고, 근처 병원과 주민센터 등을 울며불며 찾아 헤맸다. 새벽 3시쯤 근영이 이미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동생은 자신의 성격처럼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가족·친구·학교 등으로 다 분류해놨고, 가족 중 가장 앞에 등록된 선영씨에게 전화가 간 것이었다.
“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나”
근영은 이날 이태원 근처에서 여자친구와 밥을 먹었다. 다 먹은 뒤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핼러윈 축제를 구경하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에 들어섰다. 인파에 휩쓸려 ‘다시 만나자’며 떨어졌고, 여자친구는 누군가 인파 속에서 끌어올려줘 목숨을 구했다. 선영씨는 병원에 가서야 “진짜 빨갛기도 하고 되게 고통스러워 보이는” 동생의 얼굴을 마주했다. 근영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본 여자친구는 심리상담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선영씨는 엄마와 언니에게 “여자친구 미워하지 말라” “그 친구가 가장 힘들 거다. 고마워해야 할 친구다”라며 다독였다.
동생을 아산으로 데리고 내려와 장례를 치른 뒤 선영씨도 몸과 마음을 앓고 있다. 참사 뒤 한 달 반 만에 찾은 미용실에선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 원형탈모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22년 말에는 갑자기 배에서 종양이 발견돼 2023년 1월 병원에서 수술도 받아야 했다. 나라에서 소개해준 심리상담에는 어렵게 발을 디뎠다. 처음 소개받은 곳을 한 차례 갔지만 ‘국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한 어머니가 심리상담 내용이 경찰에 알려졌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에 보건소를 통해 상담치료를 소개받았다. 특히 아이가 가끔 뜬금없이 울거나 또다시 ‘삼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물으면 달래거나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제가 하는 것보다 심리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치료받을 용기를 냈다고 한다.
남겨진 이들의 근황을 전하던 선영씨는 “(자신이) 안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그래도 괜찮네’라고 느끼는 건 상관없다. 그런데 내 삶의 일부가 사라진 건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나.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갑작스레 닥친 이 상황을 이해하거나, 동생을 떠나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선영씨는 4월4일 ‘진실버스’가 대전을 찾을 때 현장에 가볼 생각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독립된 조사기구 설치 마련을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대전, 전주, 울산, 부산, 창원, 제주 등 전국의 13개 도시를 들른다.
“아기들도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는데 어른들이 왜 그것을 못하는지 너무 화난다. 이걸 보고 아이들이 뭘 배울까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진실을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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