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자신이 직접 실거주를 하겠다며 계약갱신을 요구하는 임차인을 내보낸 뒤 집을 판 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단독 정진원 부장판사는 세입자 ㄱ씨가 집주인 ㄴ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ㄱ씨가 다른 집을 임대하면서 추가로 부담하게 된 월세 150만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액수를 2천만원으로 정했다. 여기에 이사비와 중개수수료를 더해 총 2861만원을 ㄴ씨가 ㄱ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ㄱ씨는 2019년 12월 집주인 ㄴ씨가 소유한 서울 서초구의 아파트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보증금 12억4천만원에 2년 거주 조건이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ㄱ씨는 2021년 10월 계약갱신을 요청했지만 ㄴ씨는 자신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갱신을 거절했다. 2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ㄱ씨는 같은해 11월 보증금 13억원에 월세 150만원으로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중개수수료 580만원과 이사 비용 281만원도 들었다.
하지만 집주인 ㄴ씨는 ㄱ씨를 내보낸 집에 실거주하지 않았다. 대신 ㄱ씨가 이사를 나가자 마자, 그해 12월 해당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36억7천만원에 매도했다. ㄴ씨의 아파트 매매 사실을 알게 된 ㄱ씨 쪽은 ㄴ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세입자 ㄱ씨의 손을 들어줬다. ㄴ씨의 매도행위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위반”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차계약 갱신을 거절함으로써 계약갱신청구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임차인을 내보낸 뒤 새로운 임차인을 들인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다. 하지만 매도한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배상 조항이 없다. ㄴ씨 쪽은 이를 이유로 배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경우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대인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정한 이상, 법이 정하지 않은 사유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부한 ㄴ씨의 행위를 민법상 불법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인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려는 경우’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장래의 상태에 대한 임대인의 주관적 의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임차인 쪽에서 그 사유의 발생 여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이 사유를 제한 없이 인정한다면 이로 인한 갱신 거절이 남용돼 사실상 계약갱신요구권의 의미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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