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뇌전증 환자를 만들어내 병역면탈을 유도한 브로커 구아무개씨에 이어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또 다른 브로커 김아무개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브로커에게 컨설팅을 받은 의사·프로게이머·골프선수 등 병역면탈자와 이들의 부모·지인도 무더기로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병무청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은 26일 군 행정사 출신인 브로커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병역면탈자 15명,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면탈자의 부모나 지인 등 6명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1일 구속기소된 구씨에 이어 두번째로 적발된 병역 브로커다.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병역 의무자와 공모해 발작 등 뇌전증 증상을 꾸며낸 뒤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게 한 뒤, 이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게 한 혐의(병역법 위반)를 받는다. 이전 병역면탈 사건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던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등 불실기재·행사 혐의도 포함됐다. 브로커와 공모한 병역 면탈자들은 보충역 근무 중인 사회복무요원이거나 입영연기 중인 입영대상자로서, 병무청에 ‘병역처분변경신청’을 하고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허위 뇌전증 진단서와 진료기록을 제출하는 속임수를 썼다. 면탈자에는 공중보건의 의사, 프로게이머 코치, 골프선수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뇌파 검사가 정상이라도 임상 증상만으로 진단받을 수 있는 뇌전증의 특성을 악용했다. 김씨는 인터넷 병역상담카페를 개설해 병역의무자를 유인하고, ‘뇌전증 5급 미판정 시 보수 전액 환불’을 자필로 기재한 계약을 체결해 신뢰를 샀다. 컨설팅비로는 총 2억610만원을 챙겼다. 김씨는 당장 군 면제를 받아야 하는 병역면탈자에게는 허위 119 신고로 3차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게 하고, 시간 여유가 있는 면탈자는 1·2차 병원 진료를 거치게 하는 등 맞춤형 시나리오를 제공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면탈자들의 가족과 지인들도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허위 뇌전증 증상으로 119 신고를 하는가 하면, 허위 뇌전증 증상자의 목격자·보호자 행세를 했다. 직접 브로커와 계약을 체결하고 대가를 지급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 브로커를 통해 병역을 면탈한 자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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