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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해질녘 고물상, 할머니는 6천원 쥐고 다시 폐지 주우러 갔다

등록 2023-01-28 09:00수정 2023-01-28 21:45

[한겨레S] 특집
갈곳 잃은 폐지수거 노인의 하루
지난 10일 서울 한 도로변에서 박순희(가명)씨가 폐지를 줍는 모습. 박씨는 집 근처 한 마트에서 나오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주고, 종이상자 등 폐지를 가져간다. 이정용 선임기자
지난 10일 서울 한 도로변에서 박순희(가명)씨가 폐지를 줍는 모습. 박씨는 집 근처 한 마트에서 나오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주고, 종이상자 등 폐지를 가져간다.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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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여기다 뒀는데….”

손수레가 없어졌다. 지난 12일 수도권 한 고물상 앞, 박순희(가명·65)씨 발걸음이 다급하다. 40년 넘게 산 동네, 10년 가까이 함께 길을 누비던 손수레가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가면, 어느 집에서, 언제 폐지가 나오는지까지 뻔한 동네인데, 손수레가 없다. “그 시간에 안 주우면 다른 언니들이 주워 가지. 다 아는 사이니까 ‘오늘은 안 나왔나 보다’ 그러면서.” 손수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고물상 앞 전봇대 아래에 세워두지만, 이번달 들어 벌써 두번째 사라졌다.

“길 건너 그 치매 있는 오빠가 가져갔나 봐.” 박씨는 자신보다 연배 높은 노인들을 스스럼없이 “언니, 오빠”라 불렀다. 60대 중반인 그는 젊은 축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폐지수집 노인 실태에 관한 기초연구’(2018년)를 보면, 폐지수집 노인 가운데 70대 이상이 8할(77.5%)에 가깝다. 하지만 이는 추정치일 뿐 폐지수집 노인 전체 규모는 정확한 공식 집계조차 없다.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논문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에서 ‘하루 최소 8시간 이상 적극적으로 노동하는 폐지수집 노인’ 수를 1만5천명으로 본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 자료를 근거로 6만6천명(2017년 현재)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다.

박씨는 결국 고물상 앞 남은 수레 중 40㎏짜리 하나를 끌고 나섰다. 큰길 상점 뒤편이나 다세대주택 1층 주차공간 구석을 살피며 이동한다. 대로변에 닿아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치며 그는 “저쪽은 김씨 언니가 해. 나처럼 몸이 불편한데, 콩나물값이라도 벌겠다고 (그쪽 자리는 남겨달라고) 해서”라고 말했다. ㅈ슈퍼처럼 매일 정기적으로 폐지를 내놓지만, 박씨가 그냥 지나치는 상점도 있다. “여긴 내가 하기 전부터 이씨 오빠가 맡아뒀어.” 고물상을 출발한 지 한시간, 이동거리만 1.5㎞ 정도인데 손수레에 달랑 박스 몇개뿐이다. “수십년 산 동네에서 서로 사정 봐가면서 먹고사는 거지.”

두 노인 말고도 박씨와 구역을 나눠 폐지를 수집하는 영순 언니, 주로 새벽시간에 폐지를 모아서 집 옆에 쌓아뒀다가 해가 지면 고물상으로 향한다. 모두 넷, 박씨를 빼고 모두 70대다. 박씨는 골목에서 함께 크고 자라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언니, 오빠들과 길을 나눠 산다. 폐지 가격이 ㎏당 100원 할 때에 비하면 지금(㎏당 약 60원)은 한달에 폐지로 버는 돈이 20만원이 채 되지 않지만 “크게 욕심만 안 내면 살 만하다”고 한다.

한동네에 길게는 수십년씩 어울려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폐지를 모으는 입장에서는 알게 모르게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한겨레>가 노인 리어카 노동자를 지원하는 소셜벤처 ‘끌림’으로부터 받은 현장 설문 조사에서, 폐지수집 노인 중에 “여유 있는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 까닭이기도 하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폐지 수집 공유’ 방식”이라는 물음에 그는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고, 우린 다른 곳이랑은 좀 달라. 동네가 오래됐으니까 서로 욕 안 하고 안 먹고, 조금 덜 먹는 것”이라고 한다. “폐지 수집하면서, 골목 정리랑 청소하는 겸 해서 하는 거지”라고 덧붙인다. 실제 박씨를 따라 돌아본 동네 다세대주택이나 상점 아래로 폐지 분리수거 공간을 따로 둔 곳을 찾기 어려웠다. 박씨가 4㎏짜리 박스를 집어들며 “하루만 안 돌면 (분리수거 공간이) 난리가 난다”고 한 건 꼭 과장이 아니다. 민간업체와 계약으로 일괄 수거하는 공동주택(아파트)과 달리 단독·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은 박씨와 같은 폐지수집 노인의 재활용 기여율이 크다. 배 연구위원은 “박씨와 같은 폐지수집 노인이 우리나라 전체 폐지 재활용량 20.6%를 담당한다. 하지만 단독·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서만 따지면, 이들이 하루 수집량 73.9%를 거둬들인다”며 “이들에게 돌아가는 하루 보상은 시간당 최저임금(962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형편 괜찮으면 폐지수집 안했으면”

걸음을 옮겨 한시간쯤 걸었을까. 잰걸음으로 다가간 동네 놀이터 옆 재활용품 수거시설인 ‘재활용정거장’에 의류와 이불 더미가 놓여 있다. 박씨는 “오늘은 ‘운빨’이 좋다”며 수거함 옆으로 빠져나온 의류를 수레에 담았다. 수거함 안 물품은 이미 ‘남의 것’이다. “통에 들어간 거 말고, 바깥 것만 담는 게 원칙”이다.

동네 한편에서 볼 수 있는 재활용정거장은 박씨 같은 폐지수집 노인들과 무관치 않다. 원래 폐지를 포함한 재활용품이 모이는 재활용정거장은 서울에만 1만45개가 있다. 재활용정거장의 수집관리인을 폐지수거 노인 등으로 지정해, 이들에게 적게나마 안정적인 수집보상금을 준다는 구상을 포함해 서울시 조례로 설치됐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폐지수집 생태계’까지 바꾸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실제 이렇게 고용된 노인 자원관리사는 서울 786곳에서 600여명에 불과하다. 당장 폐지수집 노인을 어느 정도라도 흡수하기엔 자원관리사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결국 폐지수집 노인들은 여전히 정거장이 아닌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심지어 자원관리사 노인들도 (지자체 사정에 따라) 월 10만원 이상 지원금이 나왔음에도 수집 일을 놓지 않았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인 ‘알맹상점’ 고금숙 대표는 “폐지수집 어르신들은 오후 6시면 고물상으로 모인다. 현장을 보면 정거장과 폐지수집 노인 지원책을 따로 고민할 게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다”며 “차라리 고물상을 거점으로 삼아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들을 등록, 분류해 이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고물상에 공공 영역 안에서의 역할을 부여하자는 아이디어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에서는 도심 속 고물상은 건축법에 따라 분뇨 및 쓰레기 처리시설(자원순환 관련 시설)로 분류되면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등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본다. 행정과 입법이 동시에 풀려야 하는 난제인 셈이다.

길을 나서고 점심때가 다 돼서였다. 상점가를 지나 교회를 끼고 돌아선 주택가, 곳곳 폐지가 있지만 박씨가 못 본 척 지나친다. 박씨가 폐지를 줍는 2㎞ 반경 안에 또다른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배재윤 위원은 “폐지수집 노인 중에는 실제로 경제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그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절대 빈곤에 있는 이들부터 우선 발굴해 수요를 측정해야 한다”며 “그다음엔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지원 관련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원방안을 내놓으려고 해도 일률적인 기준이 없어 난감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집으로 향하지 못한 발걸음

잘 알려진 대로, 폐지수집 노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일을 하지만 돈벌이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박씨의 경우, 집에서 1.8㎞ 되는 거리를 한시간 넘게 걸어 하루에 세번 들르는 곳이 있다. ㅎ마트 뒤편 공터다. 박씨를 본 마트 30대 직원이 멋쩍게 웃는다. “이모님, 요즘은 과일이 잘 안 나가네요.” 과일이 팔려야 빈 종이상자가 나온다. 과일 박스 한 무더기에 못 쓰는 야채잎, 과일 껍질, 비닐 등이 뒤섞여 있다. 이곳은 관리인이 따로 없다. 박씨가 종이상자를 얻기 위해 다른 쓰레기도 분류한다. 이 작업은 오전·오후 한번씩 이뤄지고, 여기에서는 하루 100㎏까지 박스를 모을 수 있었다. 이마저도 최근 불경기로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

박씨가 구석에 차곡차곡 상자를 모아두면, 고물상 쪽이 1톤 트럭으로 실어 나른다. 이전에 월·수·금 세차례 수거하던 게 최근 두차례로 줄었다. 마트 입장에서는 박씨가 일종의 청소작업을 대신해 주는 셈이지만, 그 비용이 박씨 손에 쥐어지지는 않는다. 박씨는 “그래도 고마운 분들”이라고 한다. “마트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나마 고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욕심을 더 안 부린다”는 것이다. 마트만이 아니다. 인근 요양병원 분리수거도 하루 한번 박씨가 도맡는다. 그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입원했던 곳이다. 어쩌면 그의 평생 삶이 곳곳에서 그나마 자신을 폐지노동에 기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오후 6시, 박씨가 고물상으로 들어선다. 정산을 하기 위해서다. 이날 손에 쥔 돈은 6천원. 소셜벤처 ‘끌림’의 도움으로 손수레에 광고판을 붙이는 대가로 받는 돈이 7만원, 이걸 더해도 한달 수입은 4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집으로 곧장 가려면 200m도 되지 않는 거리지만, 그는 다시 다른 골목으로 들어선다. 박씨가 하루 일을 모두 끝낸 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시각은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다.

매일이 고되지만, 한해 그가 쉬는 날은 설과 추석 당일, 이틀이다. 지난 1년 사이 수입은 널을 뛰었다. ㎏당 100원을 넘던 폐지 가격이 지난해 말 40원까지 떨어졌다가, 그나마 올해 들어 60원을 겨우 넘겼다. 고물상 사장 ㄱ씨는 “폐지로 받는 돈이 ㎏당 100원은 돼야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고물상도 운영하는데, 이 정도(60원대)가 계속되면 버틸 방법이 없다”며 “인근 고물상도 최근 두곳이 문을 닫았다”고 푸념했다.

구석 몰린 폐지 노인들 어쩌다?

폐지 가격은 최종 구매자인 제지업체가 정한다. 중간 유통 과정(폐지수집→고물상→압축상)에서 업체들이 챙기는 이윤을 뺀 돈이 박씨 같은 폐지 모으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폐지 수집이 생계유지할 정도의 벌이가 아니었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폐지가 유독 제값을 못 받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폐지 물량이 넘쳐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제지공장 폐지 재고량은 14만4천톤에 이르는데, 통상(7만~8만톤)의 두배 가까운 수준이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여파로 종이 생산량이 줄면서 국내 폐지 재고가 급격히 늘어난 탓이 크다. 여분의 폐지를 모아두는 비축창고에 더 쌓을 공간이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더해 국내 폐지의 활로가 됐던 동남아 수출 경쟁에서도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밀리고 있다. 분리수거 정책이 꼼꼼하게 마련된 선진국들이 적은 비용으로 질 좋은 폐지를 생산하는 것에 견줘, 국내 폐지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견은 있다. 재활용제품 수집 기업 ㈜밸런스인더스트리 엄백용 대표는 “동남아 등지로 폐지 수출을 한 지 10년이 더 됐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적은 없었다”며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정부의 규제 탓에 폐지 수출길이 막혔고, 이 때문에 국내 공급이 넘쳐나면서 폐지값이 ㎏당 60원대 헐값이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엄백용 대표는 수출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일본과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다. 원래 그는 국내 폐지를 모아 중국 등에 수출했지만, 최근 일본 폐지를 현지에서 가공해 베트남에 파는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수출 규제가 까다로워, 살길을 찾기 위해 일본 쪽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규제는 환경부의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 폐기물의 품목 고시’다. 2020년 7월 개정된 이 고시는 과거 수출입신고 대상에서 면제하던 고철, 폐지 등을 폐기물 취급자와 사업장 폐기물 배출자 등으로 한정했다. 엄 대표는 “고시에 따라 ‘폐지’가 신고 대상이 되고 수출입할 수 있는 자격이 한정(폐기물 취급자, 폐기물 배출자)되면서 우리 같은 무역상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이전에 무역상을 통해 수출판로를 찾던 압축상·고물상도 마찬가지로 수출길이 막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수출로 국내 재고가 줄면 당장 폐지값이 ㎏당 30원 정도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전국 고물상 압축장에 적재된 폐지가 규제 이전처럼 수출만 돼도 재고가 줄고, 당장 폐지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 대표는 “올해 일본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수출하기로 한 폐지가 기존 한국에서 수출하던 폐지량(40만톤)과 맞먹는다”며 “수출이 막히면 관련 회사뿐 아니라 결국 수집 노인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여러모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폐지 최저가격제’ 도입 어떨까

폐지수집 노인들이 절실히 필요한 건 큰돈이 아닌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다. 당장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지자체가 아닌 전국 단위에서 폐지수집 노인의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2014년 서울을 시작으로 2020년 기준 55개 지자체에서 ‘재활용품 수집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상태지만, 전문가들은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배 위원은 “지자체에선 야광조끼나 손수레를 지원하거나 수리해주는 정도가 전부”라며 “1990년대 분리수거가 본격화됐을 때부터 따지면 30년도 더 된 문제인데 폐지수집 노인 빈곤에 대해 똑같이 시혜적 시선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끌림의 신유진 전 대표는 “실제로 어르신들이 당장 원하는 건 식료품(36%), 의약품(23%) 등”이라며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당장 먹을 쌀이 필요해 일을 한다. 조금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해지면 늘 하는 말이 의료보험을 받아도 약값은 늘 부담이 된다고 한다.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태조사가 이뤄지는 대로 생계형 수집인들을 대상으로 지자체 등 공공이 개입해 최소한의 폐지 가격을 보장해주는 ‘최저가격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금숙 대표는 “생계형 수집인들을 대상으로 ‘㎏당 100원’이라든가 일정 금액을 보장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소준철 박사는 2015년 논문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에서 “재활용정거장에 들어가는 비용(관리인 보상금)을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지원보상금 제도로 전환해 폐지값 최저치를 방어하는 데 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출 활로를 열어 폐지 수요와 값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있다. 실제 정부도 폐지 산업 활성화를 위해 수출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환경부 입장을 보면 “2018년 필리핀 폐기물 불법수출로 폐기물 수출입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수출입자 자격을 정했다.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도입된 것이니 (자격) 완화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폐지 적체 상황에서 수출량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폐기물 불법수출’은 한 국내 업체가 2017~2018년 폐기물 1만6천여톤을 합성 플라스틱으로 속여 필리핀에 불법 수출했다가 적발돼 해당 물량이 한국으로 반송된 사건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압축장을 운영하며 무역상을 통해 폐지를 수출해온 한 업체 대표는 “정부가 필리핀 사례를 들어 국내 폐지가 질적으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필리핀 사례는 엄밀히 말하면 폐지 사례가 아니다. 그 범주에 넣는다고 해도 그건 단속의 문제이지 폐지 수출과는 무관하다”며 “정부가 단속해야 할 문제를 시장을 규제하는 식으로 푸는 건 납득이 가질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중에 우리처럼 폐지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폐지수집인을 비롯해 중간 유통상인 고물상·압축상이 고사하면, 결국 국내 제지 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아울러 재활용지 사용 등 재생자원과 관련한 환경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 전직 고위 관료는 <한겨레>에 “환경부의 규제는 충분히 효과를 봤으니 이젠 국내 상황을 돌아볼 때”라며 “재고가 쌓여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모세혈관과 같은 폐지수집 노인부터 고물상, (폐지를 가공하는) 압축장 등이 하나둘 고사되기 시작하면 제지를 생산하는 산업 구조 자체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재활용 등 재생자원과 관련한 환경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출 규제 완화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때”라고 설명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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