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고3 때 원장들 만나 학원비 ‘담판’…다 해내던 널 어떻게 보내지

등록 2023-01-31 07:00수정 2023-01-31 20:25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⑰유채화
공부 잘하던 이과생은 디자이너가 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유채화(28)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유채화(28)씨.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습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은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이 무엇인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전자우편 bonge@hani.co.kr 또는 <한겨레21> 독자 소통 휴대전화(010-7510-2154).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공부를 잘하던 이과생 채화가 갑자기 입시미술을 하겠다고 했다. 디자인 일을 하는 선배가 모교에 찾아와 해준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의 불편함을 아이디어와 제품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디자이너다.” 모두가 말렸다. 채화가 엄마 안태경씨의 의견을 꺾고 고집부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열아홉이었던 채화는 이미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줄 알았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직접 입시미술학원을 돌아다니며, 미술에 대한 열망이 크고 학교 성적이 좋다는 점을 들어 학원비를 지원해달라고 원장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

채화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해결사'였다. “주변 이야기를 항상 잘 들어줬어요. 공감해주면서도 객관적으로 들여다봤어요.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같았어요.” 엄마 태경씨의 말이다. 스스로 꿈꿨던 모습도 자신의 아이디어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해결사'였다.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할 거다. 어떻게 약자의 소외 없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채화가 2021년 진행한 셀프인터뷰에서 ‘10년 뒤 모습'에 관한 질문에 답한 내용)

채화는 항상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알려 하면 할수록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진다고, 계곡의 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처럼 지식의 지평이 넓어질수록 머무는 세상이 달라진다고 그는 생각했다. 대학 졸업 이후엔 UX/UI(사용자 경험·환경) 디자이너가 됐다. 채화와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 심기윤씨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았어요. 업무 시간 외에도 공부 모임에 공모전 도전까지 하면서 일도 효율적으로 했어요.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력도 있고 발표도 잘하던 직원이었어요.”

유채화씨의 부모님 집에 있는 반려묘 ‘견우’. 유가족 제공
유채화씨의 부모님 집에 있는 반려묘 ‘견우’. 유가족 제공

1분 1초가 모자라게 살던 채화도 힘이 떨어질 때면 충전이 필요했다. 부모님의 반려묘 ‘견우'는 채화에게 에너지를 주는 존재였다. 1분 동안 견우의 털에 이마를 비비며 패딩 모자에 달린 동물 털 뭉치에 나는 냄새와 비슷한데, 좀더 따뜻하고 짙고 고소해서 중독성이 있던 ‘꼬순내'를 맡는 시간이 그에게는 충전의 시간이었다. 서울에 혼자 살며 힘이 들 땐 꼭 엄마에게 연락해 견우 사진을 부탁했다.

“걱정하지 마, 나 잘하고 있어.” 스물여덟의 채화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제를 후회하기보다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했다. 애써 뒤를 돌아보기보다 내 앞에 있을 장면들을 안아주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다.

2022년 10월29일 저녁 7시께, 채화는 이태원역에 도착해 남자친구를 만났다. 세계음식거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을 나선 밤 10시께, 핼러윈을 맞아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밤 10시7분 찍힌 휴대전화 속 사진엔 세계음식거리 초입의 모습이 담겼다. 사람이 많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채화는 거리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밤 10시14분, 해밀톤호텔 골목 뒤 T자 골목 직전에서 찍힌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채화의 회사 동료들이 채화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엽서. 유가족 제공
채화의 회사 동료들이 채화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엽서. 유가족 제공

어제를 후회하기보다 다가올 내일을 꿈꾸던 딸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많은 인파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클럽이 있던 빈 공간으로 몸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하기 전, 위에서 사람들이 아래로 무너지면서 저와 채화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게 됐고 1시간 정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채화 남자친구의 2023년 1월12일 국회 공청회 증언)

엄마는 10월29일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지인들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애들은 괜찮아?” 뜬금없는 연락에 휴대전화로 뉴스를 검색했다. 막내 채영씨, 둘째 채린씨도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이태원에 갔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첫째 채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연락을 시도하던 오전 9시29분께였다. 카카오톡 영상통화가 연결됐다. 용산경찰서였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분실된 휴대전화라며 실종신고를 하라고만 얘기했다. 채영씨가 채화의 집으로 갔다. 미처 끄지 않고 나간 컴퓨터 화면엔 이태원에 입고 나갈 옷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카카오톡 대화창이 떠 있었다.

실종신고를 하고 2시간가량 지났을 때 경기도 고양시 일산 동국대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 영안실 앞에서 두 딸의 손을 꼭 붙잡은 엄마가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막내 채영씨는 언니의 마지막을 예쁜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엄마와 아빠, 두 딸이 손을 꼭 잡고 들어간 그곳엔 고요하게 누운 채화가 있었다. “아닐 거야”라고 되뇌던 가족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아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라는 외침만 반복했다.

경찰이 와서 부검을 물어봤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게 간 아이를 이중으로 아프게 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현장에 남자친구가 함께 있었는데 왜 실종신고를 해야 했는지도 가족은 궁금했다. 남자친구는 채화 곁을 지키며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 같이 있겠다”고 말했지만 구급차로 이송될 때 가로막혔다.

장례식장엔 채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구청장에 시장까지 감투를 쓴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식이 끝난 뒤 가족을 챙겨주는 곳은 없었다. “국가에서 연결해준 트라우마센터는 그냥 인공지능(AI)과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어떠어떠한 점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그냥 ‘그러셨구나' 하고 끝이에요. 상담을 대강 해주는 것이 티가 나니까 받기가 싫더라고요.”(동생 채린씨)

유채화씨의 친한 친구 심다혜씨가 그린 채화의 모습. 유가족 제공
유채화씨의 친한 친구 심다혜씨가 그린 채화의 모습. 유가족 제공

유채화씨의 학창시절 친구 이소현씨가 작성한 편지. 유가족 제공
유채화씨의 학창시절 친구 이소현씨가 작성한 편지. 유가족 제공

시민분향소에 딸의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같은 슬픔을 겪는 다른 유가족을 연결해주는 곳은 없었다. 뉴스를 보다 다른 유가족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 다른 유가족들을 만났다. 이후 유가족협의회에도 합류했지만, 차마 시민분향소에는 채화의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이름도 공개하기 꺼렸다. 좋은 말만 수천 번 들어도 부족한 딸에게 한마디 좋지 않은 말이라도 나오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가족은 아직 이태원에도 가지 못했다.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 엄마 태경씨는 국회 국정조사 당시 이태원에서 현장조사하는 모습을 보며 ‘저 자리에 가서 내가 죽으면 일이 해결될까’ 생각했다. 채화가 느꼈던 마지막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채화의 동생들은 엄마 아빠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줬다. 반려견 ‘지존’이다. 채화가 스스로 지은 자신의 별명 ‘지존채화’에서 이름을 땄다. 속이 꽉 차고 겉도 번쩍한 느낌의 별명을 채화는 마음에 들어했다. 가족은 이제 반려견에게 그 이름을 대신 불러준다. “지존아.”

류석우 <한겨레21> 기자 raint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조민에 이례적 집행유예 구형했던 검찰, 1심 벌금형에 항소 1.

조민에 이례적 집행유예 구형했던 검찰, 1심 벌금형에 항소

정부 “의사 집단에 굴복 않겠다”…‘2천명 증원 철회’ 요구 일축 2.

정부 “의사 집단에 굴복 않겠다”…‘2천명 증원 철회’ 요구 일축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 기자 “재판에 대통령 불러 처벌 의사 묻겠다” 3.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 기자 “재판에 대통령 불러 처벌 의사 묻겠다”

서울 도심서 ‘13중 추돌’ 아수라장…1명 사망·16명 부상 4.

서울 도심서 ‘13중 추돌’ 아수라장…1명 사망·16명 부상

검찰의 불법 자백? ‘윤석열 검증’ 압수폰 촬영본 “삭제하겠다” 5.

검찰의 불법 자백? ‘윤석열 검증’ 압수폰 촬영본 “삭제하겠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