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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HIV 전파’ 상해죄 가능한데…“처벌 못한다”며 설문 돌린 인권위원

등록 2023-02-14 18:05수정 2023-02-15 02:44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 에이즈예방법 합헌 의견 제출
잘못된 전제로 설문…인권위 전원위원회 ‘위헌’과 달라
이충상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이충상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헌법재판소가 에이즈예방법을 위헌무효로 선언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 콘돔을 쓰지 않고 하는 성교를 전혀 형사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고의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전염시켜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해 에이즈예방법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낸 것으로 14일 드러났다.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본 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 의견과는 상반된 것이다.

에이즈예방법(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25조는 HIV 감염인이 혈액·체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징역 3년 처벌을 규정한다. 지난 2019년 서울서부지법 재판부가 해당 법 조항이 금지·처벌하는 행위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해져야 함)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내면서 헌재에서 위헌 여부를 판단 중이다. 법 조항만으로는 HIV를 실제 감염시킨 사람을 처벌하는지,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사람을 처벌하는지, 콘돔 없는 성행위는 곧장 범죄인지 모두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권위도 지난해 11월 전원위원회(위원장 포함 위원 11명)를 거쳐 해당 법 조항이 “감염인의 행동자유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재에 ‘위헌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위원은 자신의 ‘소수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헌재에 ‘단독 반대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달 1일 자신의 논문과 함께 제출했다. 이 위원이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HIV 감염인이 콘돔을 쓰지 않는 성교를 전혀 형사처벌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응답자 60%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헌재로 간 법 조항을 두고 이 위원이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설문을 진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악의를 갖고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면 상해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감염인의 모든 행위가 무해하다는 것이 아닌데 이런 질문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근원적 공포만 일으킬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의견서에서도 “이 조항을 무효로 만들면 HIV 감염인이 콘돔을 쓰지 않고 수천명, 수만명과 성행위를 했어도 HIV 전파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전파를 예방하기 위해 감염인이 콘돔을 쓰지 않고 하는 성행위 자체를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HIV를 범죄화한 대부분의 법이 지난 30년간 관련 연구, 의학적 발전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관련 법을 폐지하거나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학계에선 감염인이 1회 성행위로 타인을 HIV에 감염시킬 확률이 0.04∼1.4% 정도로 낮고, 감염인에 대한 꾸준한 치료로 HIV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이 위원은 감염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의견서에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 위원은 “감염인이 공중보건체계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이들이) 콘돔을 쓰지 않고 불건전한 성행위를 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 감염인 스스로 창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앞서 인권위가 현행 에이즈예방법 조항은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불안을 조장하고, 이에 따라 바이러스 감염 조기 발견과 치료를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한 것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 것이다.

이 위원은 <한겨레>에 “에이즈예방법 조항은 위헌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압도적으로 합헌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감염인뿐 아니라 5200만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의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명과 성행위를 했을 경우 감염인을 알 수 없어 상해죄 적용은 입증도 어렵다. 형사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과태료 부과 등 행정 규제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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