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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 기업과 십여년 싸우며 지킨 청구권…이젠 우리 정부와 다퉈야

등록 2023-03-06 17:28수정 2023-03-07 02:45

대법원 2012년 강제동원 피해자 청구권 인정
일 기업과 긴 소송전 버텼더니…정부가 무력화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일본기업이 아닌 국내기업 돈으로 지급한다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본기업의 직접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은 본안 소송에 이어 집행 과정까지 새로운 분란에 놓이게 됐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10여년 걸린 소송전을 견뎌낸 피해자들이,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다퉈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6일 대법원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총 70건으로 집계됐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된 3건이고, 계류 중인 사건은 대법원(9건), 2심(6건), 1심(52건) 등 총 67건이다. 원고 수로만 1139명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안은 승소가 확정된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로부터 배상을 받는 집행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부터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소송 자체가 아닌 집행 과정에 개입하는 내용이어서, 현재 진행중인 소송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기업으로부터 직접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경우 갈등 양상은 더 복잡해 질 전망이다. 법원에서 어렵게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방식을 두고 정부와 또 다른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밝힌 ‘제3자 변제’는 ‘채무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는 민법 조항에 터잡고 있다. 채권자로서는 돈을 받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므로 제3자가 변제하는 것도 인정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들은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 변제는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자 변제를 위한 채무인수에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판례가 없기 때문에, 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셈이다.

이들은 재단이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무시하고 배상금을 공탁하는 것으로 채무를 이행할 경우, 공탁금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에도 나설 참이다. 미쓰비시와의 소송에서 이긴 양금덕 할머니는 현재 미쓰비시의 국내자산을 강제집행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데, 재단이 공탁금을 걸면 강제집행 절차가 중단된다. 소송 대리인단은 “재단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하여 집행사건에 제출한다면 공탁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를 무시한 조처로 새로운 법적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본기업의 강제동원이 불법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은 사실상 일본기업의 책임을 면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어,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양 할머니 사건을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는 “이 사건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기업 사이의 소송인데 왜 정부하고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분쟁을 종식시킨 게 아니라 제3의 분쟁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강길 변호사도 “개별 가해 기업들이 피해자 개인들에게 직접 배상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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