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전남 화순군 동복호가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말라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물이 없응게, 몰라져서(야위어서), 버려불지도 못하고.”
전남 화순군 동복호 인근 길가에서 할머니 두분이 다 자라지 못해 손바닥만한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40여년 동안 이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누렇게 풀밭으로 변한 동복천을 가리키며 매해 봄이면 찰방찰방 흘렀다고 회상했다.
동복호 인근에서 할머니가 가뭄으로 자라다 만 쪽파를 다듬고 있다. 백소아 기자
남부지방은 지난해 기상 관측 49년 만에 가장 긴 가뭄이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물안개의 절경을 보여주던 동복호는 말라버린 수초와 잡초만이 가득했고, 파란 물이 흐르거나 찰랑대던 자리에는 황토색 흙길과 수몰 전 마을을 이어주던 콘크리트 다리가 드러났다. 상류 쪽에서는 지하수 관정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 유례없는 최악의 가뭄으로 동복호 아래 숨겨져 있던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까지 모습을 보였다.
가뭄으로 인해 아래부분까지 드러난 적벽동천과 노루목적벽, 보산적벽의 모습. 백소아 기자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전라남도의 주요 상수원인 동복댐과 주암댐의 저수율이 생명선이라 여겨지는 20% 아래로 내려갔다. 지난 11일 동복댐의 저수율은 19.97%, 주암댐 본댐의 저수율은 18.2%를 기록했다. 동복댐의 저수율이 2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이후 14년 만으로, 식수 공급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전남 여수와 광양 산업단지에서는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대정비·보수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당분간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주암댐은 5월, 동복댐은 6월쯤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 화순군 이서면 동북호 상류 인근에서 샘을 파는 공사가 한창이다. 백소아 기자
광주기상청이 지난달 발표한 3개월 전망 예보 자료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 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해 물 부족 사태는 여름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물을 보완하기 위해 광주시는 지난 2일부터 영산강 덕흥보 하천수를 하루 3만톤씩 용연정수장에 공급하고 있다. 4월 말 가압시설이 완공되면 하루 5만톤씩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전남 순천시 주암면 주암댐 취수탑에 새겨진 주암호의 해발고도 높이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다. 백소아 기자
11일 전남 순천시 송광면 일대 말라버린 주암호의 모습. 백소아 기자
가뭄은 광주·전남 지역만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충남 서북부 지역의 식수원인 보령댐은 저수율이 30%까지 낮아져 가뭄 관심 단계까지 발령됐다. 2021년 겨울에는 전국 강수량이 예년의 14%에 미치지 못해 최악의 겨울 가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의 상시화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물 부족 사태에 저수지나 취수시설 확충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좀 더 나아가 장기적인 계획과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2023년 3월 13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화순/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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