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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D 프린터로 수업하다 숨진 아들…명예만은 살리고 싶어요”

등록 2023-03-14 05:00수정 2023-03-14 17:46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
③ 고통을 상속한 가족들
과학교사 아들 잃은 아버지
“3D프린터 장려한 정부 책임 안 져”
디스플레이 노동 딸 잃은 아버지
“살아서 가족 이끌겠다던 딸…”
육종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서울씨의 공무상 재해 신청과 관련해 지난달 27일 세종시 인사혁신처에 방문했던 서정균씨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정환봉 기자
육종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서울씨의 공무상 재해 신청과 관련해 지난달 27일 세종시 인사혁신처에 방문했던 서정균씨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정환봉 기자

“아버지, 살고 싶어요.”

2020년 6월27일 새벽 3시5분. 서정균(68)씨는 잠결에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눈을 마주친 아들 서울씨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방을 나갔다. 한달 뒤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서씨는 그 이후 1년 넘게 매일 새벽 3시면 눈이 떠졌다. 하지만 아들은 없었다.

‘1983.6.13-2020.7.29’ 37년의 짧은 삶을 기록한 아들의 하얀 유골함에는 ‘과학은 상식이다’라는 글이 적혔다. 그는 과학을 사랑했다. 그리고 제자를 사랑하는 고등학교 과학교사였다.

과학을 좋아하던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물리천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천문학자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면 칠레로 가려 했다. 고도가 높고 하늘이 맑은 칠레에는 여러 나라의 천문대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대학 진학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탓에 아들은 안정적인 미래를 선택했다. 경북대 사범대학 물리교육과에 입학해 4년 장학금을 받았다.

아들 학교 다른 교사도 육종암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2013년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지도하면서부터 아들은 3D프린터를 사용했다. 2014년 정부는 3D프린터를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학교에서도 교육할 것을 장려했다. 2016년 경기도의 한 과학고등학교에 부임한 뒤에도 아들은 10여대의 3D프린터를 활용해 학생들을 교육했다. 서씨 부자는 3D프린터에서 해로운 플라스틱 나노입자가 나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3D프린터를 사용하던 학교 공간에 제대로 된 환기 장치조차 없었다는 사실도 서씨는 아들이 숨진 뒤에야 알았다.

아들이 육종암 진단을 받은 것은 2018년 2월. 육종암은 뼈, 근육, 신경 등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암이다. 서씨는 암도 금방 고치는 세상이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육종암은 달랐다. 방사능 치료와 견디기 어려운 화학 치료가 반복됐고, 아들은 결국 2020년 7월29일 세상을 떠났다.

가족력도 없는 아들이 왜 암에 걸렸는지 서씨는 몰랐다. 하지만 아들과 같은 학교에서 3D프린터를 사용한 또 다른 교사도 육종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뒤늦게 아들의 블로그 글을 찾았다. 사망 한달여 전인 2020년 6월10일 작성한 글에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페이스북에 3D프린터가 위험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면서 (3D프린터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했다”, “3D프린터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화학물질들이 위험한지 아닌지 충분히 연구를 해보자”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날 아들은 함께 3D프린터 실습을 했던 제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얘들아, 나중에라도 혹시 건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병원은 일찍 가야 한다”며 “3D프린터가 출력하는 과정에 좋지 않은 물질들이 많이 나와. (중략) 시티(CT) 촬영비는 청구하면 내가 부담해줄게”라는 글을 남겼다.

그 뒤로 서씨는 아들의 병이 3D프린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육종암으로 투병하는 다른 교사 2명과 함께 2021년 2월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재해 신청을 했다. 서씨는 3D프린터 관련 논문은 모조리 찾아 읽고 2021년 9월 부산·경남교육청부터 청와대까지 자전거 국토대장정을 하며 3D프린터의 위험성을 알리고 아들의 공무상 재해 인정을 요구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들을 잃었지만, 명예만큼은 살려야 하잖아요. 정부는 3D프린터 사용을 장려해놓고 정작 책임은 안 지고 있어요. 아들이 그 위험을 알렸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어요.” 아들의 공무상 재해를 신청한 지는 2년이 다가오지만 역학조사는 지난달에야 끝났다. 공무상 재해 승인 여부는 이달에 결정된다고 한다. 결과는 미리 알 수 없지만, 서씨는 아들의 명예를 찾을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작정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50㎏이었던 딸, 부종으로 퉁퉁 부어

딸을 잃은 정승규(62)씨도 아직 기다리는 중이다. 스물일곱살에 생을 마감한 정다움씨는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경북 김천에서 살았던 딸은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2009년 12월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해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빠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딸과 같은 고등학교에서 삼성에 입사한 것은 혼자였다고 해요. 딸이 자기 살길을 스스로 찾아낸 게 너무 좋더라고요. 가족들 모두 잔치 분위기였죠.” 삼성디스플레이 아산탕정 공장에서 일했던 딸은 디스플레이 글라스 얼룩 여부를 검사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딸은 입사 1년6개월 만에 아프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고통받던 딸은 2011년 5월 경북대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전신홍반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아픈 딸은 병가와 휴직을 하다 2013년 4월 퇴사했다.

딸은 2017년 11월부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몸무게가 50㎏ 정도였는데 100㎏ 가깝게 늘더라고요. 신장부터 장기가 하나씩 망가지다 보니 부종이 생긴 거예요.” 혼자 몸을 지탱할 수 없었던 딸은 김천의 집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하지만 병세가 깊어지면서 통원 치료가 불가능해진 딸은 2018년 초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정씨는 화상처럼 온몸에 퍼진 물집을 드레싱하며 딸을 간병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였던 정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5000만원을 빌려 딸의 치료비 등으로 써야 했다.

머리를 수천개의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딸은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하나님, 저 살려주세요. 저는 장녀예요. 우리 가족 이끌어야 해요. 불쌍한 엄마, 아빠 도와줘야 해요.” 정씨는 딸이 병원에서 매일 기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도에도 딸은 2018년 9월 끝내 숨을 거뒀다.

정씨는 얼룩 검사 과정 중 과도한 빛 노출과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딸이 병에 걸렸다 믿는다. “루푸스의 원인 중 하나가 빛인데 딸이 일하면서 계속 빛을 많이 쐬었거든요. 스트레스도 컸어요. 직장 동료가 엄청 괴롭혔다고, 입원해서도 많이 원망했죠. 그런 이유로 아팠던 게 아닐까 해요.”

정작 딸이 아플 때 가족들은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못했다. 정씨는 딸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지인이 산재 처리는 됐냐고 물은 뒤에야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2018년 11월 산재를 신청했지만 4년3개월이 지난 지금도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역학조사가 끝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4년을 넘게 기다린 딸의 질병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는 “근거 부족”으로 나왔다. 빛 노출과 스트레스 등의 작업 환경이 루푸스 발병의 원인이라고 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모든 결론을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빠는 너무 지쳤다. “삼성 백혈병 사건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돼요. 딸아이가 고통받은 것이 자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책임이라는 걸 밝히고 싶은데…. 엄마는 지금도 딸 생각에 계속 울어요.”

아들과 딸은 아픔과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아픔이 끝을 모르는 기다림의 고통으로 남은 가족들에게 상속되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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