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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0년 ‘최장기 사형수’의 편지...“참회 속 오늘일까 내일일까?”

등록 2023-04-08 07:00수정 2023-04-09 09:52

[한겨레S] 커버스토리
‘용서와 응보’ 사형제 논란
아내 다니던 종교시설 불 질러 사상자 40명
올해 11월이면 사형집행 30년 시효 만료
‘실질적 사형폐지’ 상황 범죄억제 효과 분분
사형수 원아무개씨가 사형제도를 연구하고 있는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에게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보낸 34통의 편지. 편지에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죄를 뉘우치는 내용이 담겼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원아무개(66)씨는 ‘사형수 신분’으로 29년5개월째 복역 중이다. 1992년 10월 강원도 원주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숨지게 하고 25명을 다치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 등)로 1993년 1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나가는 아내와 갈등을 빚던 원씨는 술에 취해 왕국회관에 들어가 휘발유를 붓고 범행을 저질렀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졌다. 피해자 중에는 13살 미성년자도 있었다. 그날 사건으로 원씨는 붉은 명찰을 단 사형수로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살고 있다. “단 한시도 그 순간(사형 집행)을 잊고 지낸 적은 없습니다. 내가 지은 죗값으로 받아놓은 밥상이기에 오늘일까, 내일일까, 내년일까…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매년 똑같은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올해 11월이면 국내 최장기 사형수인 원씨도 복역 30년이 된다. 형법에서 30년은 사형 집행 시효가 완성되는 기간이다. 형법 78조는 사형에 대해 ‘재판 확정 뒤 30년간 집행되지 않으면 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30년이 지나면 구금 역시 중단되느냐를 놓고 “30년이 지나면 석방해야 한다” “사형 대기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아 계속 구금할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30년 사형 집행 시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올해 11월 이후 원씨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1997년 12월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사형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며, 헌법재판소에서는 세번째 사형제 헌법소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제도 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겨레>는 옥중에서 보내온 원씨 편지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최장기 사형수의 삶을 들여다봤다. 원씨는 사형제를 연구 중인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에게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34통의 편지를 보냈다.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사형수와 무기수는 “생명과 죽음”

“정말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았어요. 열심히 살았고, 부지런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는데 한순간에 이런 큰 죄인이 되고 말았네요.”(2021년 4월16일 편지)

편지에는 지난날에 대한 후회, 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원씨는 평범한 공기업 직원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고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회사에서는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씨 역시 “(사건 전까지) 36년간 경찰서 한번 가본 적 없고 누구와 싸운 적도 없다”(2018년 11월17일)고 했다.

하지만 한순간의 범행이 30년째 그를 담장 안에 가뒀다. ‘남은 자’인 원씨는 언제든지 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당시(1997년 12월30일) 같은 사동에서 집행장으로 먼저 출발하는 형제를 보았는데, 저는 그때 남은 자가 되어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의 값이기에 언젠가 받을 생각으로 살았습니다.”(<한겨레> 서면 인터뷰)

매일 죽음을 떠올리는 공포는 원씨의 몸에 암세포로 자리잡았다. 복역 12년째이던 2005년 9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고 숨을 쉴 수 없어 수용자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운이 좋게도 그는 2006년 10월 간의 12㎝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원씨는 “‘다음엔 내 차례구나’ 하는 마음을 품고 살다 보니 간에 암이 자리잡았는데도 모르고 살았지 싶다”고 말했다.

‘남은 자’로서의 하루하루를 원씨는 기도로 시작한다. 종교 문제로 사형수가 된 원씨가 수감 뒤에는 개신교를 믿고 있다.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2심 재판을 받던 중 일면식도 없는 교회 권사가 면회를 와 ‘참회하라’는 성경 메시지를 전한 게 계기였다.

원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26년이란 세월을 속죄하면서 지은 죄를 씻어내고 싶었는데 그 죗값은 제게서 떨어져나가지 않네요. 나로 인해 생명을 잃으신 분들의 생명을 회복해드릴 수 없음에 늘 가슴 아픈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2018년 12월8일) “정말 많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무서운 죄인의 모습, 갇힌 자가 되어 자유를 잃고 사는지. 저 자신이 많이도 미워지고 그렇습니다.”(2021년 4월3일)

동료 수형자들에게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은 죗값이 이렇게 크고 무섭다는 것을 옆의 동료에게 전해주고요. 두번 다시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자유를 박탈당한 삶은 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표본이 바로 저잖아요. 그래서 저를 보라고 해요.”(2022년 10월15일)

원씨는 2018년 12월1일 편지에서 사형수와 무기수는 “하늘과 땅 차이이고, 생명과 죽음”이라고 썼다. 사형수는 늘 죽음의 문턱 앞에서 하루를 지워내듯 살아가야 하지만, 무기수는 참회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면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 가석방 가능성을 열어둔 ‘상대적 종신형’을 대체형벌 중 하나로 검토하는 이유다. 원씨는 “감형의 은전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남은 사람들도 생각과 인성이 바뀐다. 더 근신하고 자중하며 사는 사람이 된다”(2019년 1월19일)고 썼다.

원씨는 그동안 동료들과 다투거나 문제를 일으켜 ‘징벌방’에 간 적이 없는 모범수에 속한다. “36살에 들어와 불혹의 나이에 매일 길 떠날 준비만 하며 살았고, 지천명의 나이에 간암과 싸웠고, 이순의 나이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만 흘린다”고 했던 원씨는 “정말 염치없는 마음이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죗값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2019년 4월28일)고 적었다. 모범 사형수에 대한 감형은 2007년 12월 6명을 마지막으로 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형 확정 2016년이 마지막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는 59명(일반 55명, 군 4명)이다. 2014년 6월 육군 병장 시절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아무개(31)씨가 마지막 사형 확정자(2016년 2월19일)다. 2021년 12월 알고 지내던 여성을 살해하고 주검 유기를 도운 공범까지 살해한 권재찬(54)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 진행 중이다. 2021년 12월 충남 공주교도소에서 동료 재소자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무기수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올해 1월 항소심은 사형을 선고했으며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흉악범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상급심에서 감형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강제추행하고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41)씨, 주민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안인득(46)씨는 1심 사형이었지만, 항소심·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란 한국의 특수성과 판사들의 인식 변화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과거보다 사형 선고가 자제되고 있다고 본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사형 선고를 해도 집행을 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존폐 여부 논란이 있는 사형을 선고하는 데 심리적 부담이 크다. 징역 30~40년이나 무기징역 대신 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법관들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법률가가 늘고, 법관 사이에서도 사형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진 경우가 늘어난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위하효과)가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도 사형 선고·집행이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사형제 연구가 오랜 기간 이뤄진 미국에서도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에 대해서는 연구진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헌법재판소 사형제 헌법소원 사건의 참고인인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뒤 지난해 7월 헌재에 낸 의견서에서 “사형제가 억지력을 발휘하는지 일의적(하나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유보적인 의견을 냈다. 법무부 쪽 참고인으로 지난해 7월 헌재 공개변론에 나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응보적 정의감이 깨졌을 때 나타날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며 사형제 존치를 주장했지만, 사형제 효과에 대해서는 “범죄 억지력, 즉 일반예방적 효과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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