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사형제가 세 번째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르면서 헌재가 사형제 위헌이라는 결단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헌법소원에서는 헌재 재판관 9명 중 사형제 합헌 의견이 5명, 위헌 의견이 4명으로 팽팽했다. 윤석열 정부의 헌법재판관 물갈이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중도·진보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이번엔 사형제 위헌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형제가 처음 헌재 판단을 받은 것은 1996년 11월이다. 살인, 강간미수 등 혐의로 1·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정아무개씨가 낸 헌법소원에서 헌재는 재판관 7대2로 합헌 결정했다. 당시 다수의견은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밝혔다. 다만 위헌 의견을 낸 김진우 당시 재판관은 “사형제도로 달성하려는 목적인 범인의 영구적 격리는 무기징역에 의해서도 달성될 수 있다”고 했고, 조승형 재판관은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형벌의 목적 중 하나인 개선 가능성을 포기하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형제 폐지론에 불을 지폈다.
1996년 2명에 불과했던 사형제 위헌 의견은 2010년 2월 두 번째 사형제 헌법소원에서 4명으로 늘었다. 위헌 결정은 재판관 6명의 찬성을 필요로 하기에 결과적으로는 합헌 결정이 났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점차 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위헌 의견을 낸 조대현·김희옥·김종대·목영준 당시 재판관들은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점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서 사형이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한 점 △법관의 사형판결 뒤 법무부장관·검사·교도소장 등이 개인의 신념과 무관하게 생명박탈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 등을 위헌 근거로 들었다. 현재 헌재는 존속살해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최종 무기징역이 확정된 무기수 윤아무개씨가 청구한 사형제 관련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사형제에 대한 법조계 일반의 인식 변화와 현재 헌재 재판관 구성 등을 돌아볼 때, 위헌 결정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에 대해 폐지나 위헌 가능성을 언급한 재판관은 9명 중 7명이나 된다. 청문회 속기록을 보면, 사형제 폐지에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재판관은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이은애·문형배·이미선 재판관 5명이다. 이영진 재판관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는 위헌 소지도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고, 정정미 재판관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사형폐지론 쪽으로 생각이 좀 기운다”고 했다. 다만 정 재판관은 지난 1월 대전고법 재직 시절, 재소자 살해 혐의로 기소된 무기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김기영 재판관은 “확실하게 결론을 못 냈다”고 답하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김형두 재판관의 인사청문회에선 관련 질의가 없었다.
다만 사형제 존폐에 대한 입장은 생명과 인간성에 대한 철학, 종교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주제라 과거 발언이나 판결만으로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한 고법 형사부 판사는 “피고인을 둘러싼 사정이나 교화 가능성을 더 고려하면서 법원이 사형 선고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해야 사형 선고를 할 수 있는데, 아예 없다고 보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법원의 다른 판사도 “반성의 기미가 없고 교화 가능성이 없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나 사형을 선고하게 될 텐데, 그런 피고인을 만나보지 못하는 판사도 많다”며 “과거 판결만으로 사형제에 대한 생각을 짐작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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