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강아지. 동물자유연대 제공
재난은 사람에게는 물론 동물에게도 잔혹하다. 눈앞에 닥쳐온 화마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무력함에 빠진다. 지난 11일 강릉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로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앞선 재난보다 동물들의 피해가 덜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반려견들의 목줄을 풀어주고, 반려인들도 키우던 동물들과 함께 대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3일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새까맣게 잿더미만 남은 마을에 반려견들의 목줄이 끊겨 있는 경우를 간간이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반려견들의 목줄이 풀려 현장을 피할 수 있게 돼, 다른 대형 산불 사례와 비교했을 때 동물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절단된 상태로 발견된 강아지 목줄. 동물자유연대 제공
최민정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19년 고성 산불 현장에선 죽어있는 반려견들이 상당했는데, 이번 현장에서는 피해 반려견이 많지 않았다”며 “현장에 있던 반려견은 소방관들이 목줄을 풀어줘서 현장을 떠날 수 있어서 피해를 줄일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전날(12일) 오후 강릉 산불 현장을 찾아 8시간가량 동물 피해 현황을 파악했다.
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토끼. 동물자유연대 제공
상당수 반려인들 또한 동물과 함께 빠져나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 활동가는 “이전 산불에서는 반려인들이 동물들을 현장에 두고 나와 피해가 큰 적도 있었다. 이번엔 동물들을 챙기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대피하려고 노력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상 재난 임시대피소에선 사람만 머무를 수 있고, 반려동물을 받아주지 않는데 이번 대피소에서는 반려인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소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한다.
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목줄이 풀려 마을을 배회하던 동물들은 주민들의 신고로 강릉시 유기 동물보호소로 옮겨졌다. 이번 산불로 강릉시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겨진 동물은 10마리다. 보호소 관계자는 “지난 화재로 강아지 아홉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보호소에서 맡았고 이들 중 대다수는 주인이 찾아가거나 찾아갈 예정이라는 연락이 왔다”며 “산불이 민가로까지 퍼지면서 유기된 동물들이 상당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려인과 소방관들의 덕분에 반려견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일부 동물들은 화재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날 기준 반려견 3마리가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염소 네댓 마리와 닭 수십 마리가 숨진 것을 확인했다.
최 활동가는 “이번엔 동물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 구조 등에 대한 매뉴얼 마련을 비롯해 반려인들을 상대로 한 교육 등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일 강릉 난곡동 산불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강아지. 동물자유연대 제공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