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원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이 ‘사람이 많아 혼잡하다’는 민원을 접수하고도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지시로 윤석열 대통령 비판 전단을 떼러 갔다고 증언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용산구청 당직실에 별다른 지침은 없었다고도 말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15일 오후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박 구청장 등은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려 사고 위험이 명백하게 예견되는데도 대처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는 용산구청 관계자들이 참사 발생 징후를 포착하고도 대비하지 않은 정황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참사 당일 저녁 8시30분께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이 ‘차와 사람이 많아 혼잡하다’는 민원을 접수했고 현장에 나가보려고 했지만, 박 구청장의 지시를 받고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윤 대통령 비판 전단을 떼게 됐다는 것이다. 당직 업무를 총괄했던 직원 조아무개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비서실장을 통해 이런 지시를 전달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구청장 쪽에선 “비서실장은 조씨에게 ‘구청장이 지시했다’고 전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며 반박했다. 그러자 조씨는 “경찰이 전단지 제거 여부를 알려달라고 해서 ‘새벽에 상황을 봐서 하겠다’고 답했다고 보고했더니 (비서실장이) ‘구청장 지시사항’이라고 했다”며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밤 10시20분께 소방으로부터 이태원 골목 질서유지를 위한 상황전파 메시지도 받았지만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은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나타났다. 조씨는 “당직실에 위급하다는 민원이 없었고 상황전파 메시지만 봐서는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며 “소방이 출동해 업무를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조씨는 밤 10시30분께 재차 소방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도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은 밤 10시53분께 행정안전부의 연락을 받고서야 현장에 출동했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도 당직실엔 별다른 지침도 내려온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안전관리 업무와 관련한 교육을 별도로 받은 기억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 쪽은 이를 근거로 용산구청의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재판에 앞서 “제대로 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종관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은 “박 구청장과 부하 직원들은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안전관리 책임이 없다는 등 이유로 무죄를 주장한다”며 “어떤 이유라도 (이태원에) 사람이 몰려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남의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2차 공판기일은 다음달 26일 오후 2시30분 진행될 예정이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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