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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년 시한부 엄마 “제 목숨은 셋”…두 장애자녀, 누가 돌볼까요

등록 2023-05-17 09:00수정 2023-05-17 19:29

발달장애 남매 어머니 김미하씨
자립지원 약속받기 위해 항암치료 중 ‘투쟁’
경기도, 지원주택·24시간 돌봄 약속했지만…
유방암 4기로 투병하며 발달장애가 있는 두 자녀를 돌보고 있는 김미하씨가 4일 오전 경기도 의왕의 집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체계 구축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눈물을 닦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유방암 4기로 투병하며 발달장애가 있는 두 자녀를 돌보고 있는 김미하씨가 4일 오전 경기도 의왕의 집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 돌봄체계 구축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눈물을 닦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선생님, 저는 장애를 가진 두 아이까지 목숨이 3개예요. 그냥은 못 죽어요.”

지난 4일 경기도 의왕시 자택에서 만난 김미하(60)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난해 8월 초를 생각하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온 몸에 암세포가 퍼져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두려운 말에 김씨는 죽음의 공포보다 장애를 가진 두 자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있더라도 5년만 더 살 수 있으면 자녀들을 자립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의사 선생님께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날 제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지금도 그 기분이 생각이 나요.”

지난해 ‘돌봄 부담’에 내몰린 발달·중증장애인 가족들이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빨라야 내년 6월에 전국에서 시행되고, 지원 대상이 좁은 탓에 여전히 발달장애인 가족 중에는 ‘투쟁’ 끝에 돌봄 지원 서비스를 약속받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남은 생 1년뿐인 엄마의 싸움

김씨의 자녀들은 발달장애인으로 주변의 돌봄 없이는 홀로 살아가기 어렵다. ‘스미스마제니스증후군’이라는 유전병을 가진 딸 전지민(29)씨는 이로 인한 인지·행동 장애가 있다. 아들 전태형(25)씨는 혼자 밥을 하고, 설거지하는 등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자폐성 장애가 있어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를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김씨가 자신보다 자녀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입원한 나흘간 제가 한숨도 안 자고 울기만 했대요. 남편도 2021년 5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제가 몇달 더 살고 안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1년 안에 아이들을 해결(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나 김씨가 없어도 남매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체계는 전무했다. 경기도 등 지자체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자체에 ‘발달장애인 개인별 지원계획’을 요청했지만, 답은 활동지원서비스 추가 등 임시조처뿐이었어요. 심지어 ‘시설에 보내야 한다’는 공무원도 있었죠. 괴롭게 애들 걱정하면서 6개월 더 사느니 차라리 ‘뭔가’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설’에 남매를 보낼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개별 장애인의 특성이나 욕구를 무시한 채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여러 장애인 시설을 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탈 행동’을 하는 아들은 시설에 가면 ‘문제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죠. 그리고 시설에서는 관리를 위해 약물을 투여해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해요. 저는 아이들이 시설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김씨는 항암치료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지난 1월 경기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월8일엔 농성을 하는 등 투쟁에 나섰다.

이러한 ‘투쟁’ 끝에 지난 3월30일 김씨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로부터 지원주택(장애인이 자택에서 거주하며 지원서비스를 받는 형태)과 24시간 돌봄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비효율적’ 예산 지출이라고 생각하는 공직사회의 시선 탓에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원 체계에 대해 지자체에 목소리를 낸 후 공무원들로부터 들었던 말이 ‘심한 장애인 쟤 하나 때문에 곤란하다’는 말이었어요. 정부는 장애인 정책에 돈을 쓸 땐 효율성을 따지잖아요. 김동연 지사도 만났으니 약속은 지켜지겠지만, 엄마가 살아있는 지금도 이런 시선을 받는데, 지원 체계가 앞으로도 잘 작동할지 걱정이에요.”

지난 10일 7차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김씨는 10년 후, 20년 후 남매들이 직장에서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고 했다. 남매뿐만 아니라 전국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돌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란다.

“누군가로부터 착취나 폭행을 당하는 등 특수한 상황만 잘 감시해줄 기관이 있다면, 아이들이 지역에서 행복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늙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 남매의 ‘엄마’ 김미하(60)씨의 이야기는 국내 등록 발달장애인 26만3311명(2022년 기준·보건복지부)과 그들의 가족들이 겪는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담이 가족들에게 전가되어 있고, 자립을 위한 지원이 부족한 탓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담은 개별 가족에 전가되어 있다. 16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가 지난해 9월 발달장애인 가족돌봄자 43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발달장애인 중 95.7%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정도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고, 26.3%는 하루 20시간 이상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중 0.1%만이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활동지원서비스를 하루 20시간 이상 지원받고 있었고, 이로 인해 주 돌봄자인 어머니(91.7%) 중 52.8%는 발달장애 자녀 지원을 위해 경제활동도 포기하고 있었다.

돌봄 부담으로 발달장애인 가족 중 다수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러한 돌봄 부담으로 발달장애인 가족의 41.1%는 신체적 어려움, 47.3%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59.8%는 발달장애 자녀 또는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김씨는 “언론을 통해 극단적 선택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면, 많은 부모가 암암리에 언젠가는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어려움이 알려지고, 실제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오는 2024년 6월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통합 돌봄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해당 사업으로 혜택을 보는 발달장애인은 등록 장애인의 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최용걸 부모연대 정책국장은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나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 의지는 환영할 만하지만, 전 생애를 아우르는 대책은 아니다”라며 “영유아기 시기 발달장애 조기 진단 및 가족지원 체계에서부터 성인기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주거 및 생활서비스 지원까지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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