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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 가리겠다”는 김광동…위원회에서도 “설립 취지 뒤엎는 극언”

등록 2023-05-25 16:31수정 2023-05-25 20:08

25일 진실화해위 2주년 맞이 기자 간담회서 김광동 위원장 발언
25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조사 개시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25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조사 개시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베트남전 민간인 희생자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어갈 사안이다. 특정 개인이 상대국 정부 대상으로 조사 피해구제 요청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희생자 중에 실제 부역자가 있는지) 좀 더 세밀한 기준 가지고 판단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위원장이 25일 오전 진실화해위 2기의 첫 조사 개시 2주년을 맞아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미군이 가해자인 노근리 사건은 조사하면서, 베트남에서 일어난 자국 군대의 사건을 조사하지 않는 한국의 태도를 외국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질문에 “외국인이 외국에서 전쟁 시기에 있었던 사건은 조사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부역 혐의 희생자 중에 실제 부역자가 있었나?”는 질문에는 이옥남 1소위 위원장과 함께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려고 논의 중”이라며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법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근거가 충분한 사건 개시를 각하하는 한편으로, 진실화해위 위원장으로서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진실화해위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24일 오후 전체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은 1968년 한국군에 의해 135명이 희생된 베트남전 하미 학살 조사를 반대하는 국민의힘 추천 위원들의 편을 들어 이 사건 조사 개시를 최종 각하시킨 바 있다. 김 위원장이 근거로 내세운 진실화해위 기본법 제2조1항4호는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을 조사범위로 정하고 있는데, 문구를 따져보면 외국 국적자를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 규정이 아니다. 진실화해위 내부에서도 조사 범위 해석과 관련해 “진실화해위 기본법엔 외국인 조사 제한 규정이 전혀 없고,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리게 되면 이후 당사자들과의 행정소송에서 패소할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김 위원장은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전체위원회에서는 “외국 국적이어도 같은 핏줄, 역사를 공유하는 동포들의 사건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외국인을 조사할 필요와 여력이 있느냐”는 차별적인 발언까지 쏟아졌지만 김 위원장은 이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김 위원장은 또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신청 건수(9957건)가 적대세력 사건 희생자 신청건수(3885건)보다 2배 이상 높은데 진실규명 건수는 거꾸로 적대세력(465건)이 민간인 집단희생(332건)보다 많다. 불공정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대세력 희생자들은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록을 찾기 쉬우나 빨갱이 좌익으로 몰린 사람들은 기록하지 않거나 감춘 경우가 많아 명확지 않다”고 말했다. 적대세력 희생자란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이나 지방 좌익, 빨치산들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희생자란 한국전쟁기 보도연맹원이나 부역혐의자로 몰려 군경 및 치안대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가리킨다.

맹억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아산유족회장은 “김광동 위원장이 취임 이후 적대세력 희생사건만 강조하는 느낌인데,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자 조사는 서류가 완벽하지 않으면 조사 불능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 유족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맹 회장은 “유족 간담회 자리에서는 김 위원장이 증인만 확실하면 조사 개시가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실은 완전히 달라 유족들 사이에 ‘이렇게 가만있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유족들의 경우 대부분 80대 초반 이상으로 사건 당시 어린이였거나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여읜 경우가 많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 때 진술이 가능했던 가해자나 목격자 등 참고인들은 상당수가 세상을 떠난 상황이어서 유족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희생자 명부나 처형자 명단을 입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28일 아산에서 발굴한 부역혐의 사건 희생자 유해사업에 관해 1억2천만원을 편성해 신원확인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면서 “부역혐의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구제를 지금까지 해온바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을 모색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1기보다 더 많은 부역혐의 희생 사건 신청자들에 대해 어떻게 조사할 건지, 1기와 차별점은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조사 개시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옥남 1소위 위원장, 오른쪽은 이상훈 2소위 위원장.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25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조사 개시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광동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옥남 1소위 위원장, 오른쪽은 이상훈 2소위 위원장.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김 위원장 출범 이후 진실화해위가 적대세력 희생자 조사에 치중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게 안팎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부역 혐의 희생자 중에 실제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말은 김 위원장의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부역혐의 사건은 다 날릴 분위기다. 아마도 희생자들이 무슨 부역 행위를 했는지 조사하라는 지침이 내려올 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전쟁 기간에 재판 등 아무런 절차 없이 산에 끌려가 총살당한 이들에게 혹시 혐의가 있는지 세심히 살펴보겠다는 것은 진실화해위의 설립 취지와 존립 근거를 뒤엎는 극언”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25일 기자간담회 인사말에서 ‘진실규명 결정 뒤 다시 법원 소송으로 가는 불편함이 없도록 보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보상을 결정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 ‘불과 1년 남은 조사 기간의 연장’ 등을 현안 과제로 꼽았다. 주요성과로는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수용시설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규명과 권고이행 추진, 국외입양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개시 등을 꼽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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