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31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경비 대책회의를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31일 민주노총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강경 대응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현장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지휘관 판단으로 캡사이신을 쓰도록 준비하라 했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경비대책회의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이처럼 밝혔다. 기동복을 입고 나타난 윤 청장은 이날 오후 민주노총 집회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관할 경찰서인 남대문경찰서에서 직접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동대원들 격려하고 사기 진작하는 차원에서 청장도 기동복을 입은 것”이라지만, 일선 현장에 그 자체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강경 대응 메시지를 준다는 지적이다.
윤 청장은 “경찰은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민 자유를 볼모 삼아 관행적으로 자행된 불법에 대해 해야 할 역할을 주저 없이 당당하겠다는 게 원칙”이라며 강경 대응이라는 외부의 지적을 부인했다. 윤 청장은 이어 “캡사이신은 현장 상황에 따라서 부득이 필요하면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살수차 재도입에 대해선 “그 부분은 차차 시간을 두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강경 대응이 아니라면서도 집회 현장에서 6년 만에 캡사이신 분사를 준비하고 강제해산을 운운하는 경찰의 행보는 집회 때 발생하는 ‘불편’을 이유로 집회 개최도 전에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겁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기본권을 제한할 땐 비례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을 경찰은 잘 알면서도 이렇게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보고 집회를 억제하는 것”이라며 “기본권의 제한과 집회하지 않는 시민의 불편을 동등한 무게로 두고 대립하게 하면서, 집회의 자유에 내재된 요소인 불편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윤 청장은 이날 강제해산 기준과 관련해서도 “신고된 시간을 초과해서 불법집회 형태로 진행된다거나 과도한 교통불편을 야기하는 경우, 차로 점거 등 불법 행위에는 (강제) 해산을 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날 ‘비폭력 집회 강제해산은 위법하다’는 지적에 대해 교통 불편 및 소음 등이 발생할 경우 판례 및 법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경찰의 주장을 이어나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생명·신체 위협이 초래될 게 명백한 경우’에 강제해산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경찰이 왜곡해 해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청장은 전날 경찰청에서 열린 상황점검회의에서 민주노총 대규모 집회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지난 25일 불법집회 해산 및 검거 훈련을 6년 만에 재개하고, 같은 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 야간문화제를 강제해산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 하루 전날만 하더라도 내부 화상회의에서 양회동씨 분신과 관련한 분위기를 고려해 ‘안정적인 상황관리’를 주문했지만, 이튿날부터 여당의 질책이 이어지자 태도가 급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건설노조 집회를 두고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께서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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