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사건에서 2심이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이 심리가 부족하다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일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기소된 ㄱ씨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ㄱ씨는 성관계 뒤 상대 여성 ㄴ씨가 잠든 사이에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2019년 1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 요청으로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 보여주었는데 다른 여성의 비슷한 사진과 동영상이 발견됐다. ㄱ씨는 추가 범행을 자백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임의제출했다. 경찰은 피의자 신문조서에 압수 취지를 적었지만, 압수조서나 전자정보 압수목록은 작성하지 않았다.
ㄱ씨는 범행을 자백했지만 경찰이 압수한 사진과 동영상의 증거능력을 두고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1심은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는 “경찰이 압수조서 작성과 압수목록 교부 절차를 지키지 않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일부 증거를 위법 수집으로 판단했다. 형량은 징역 6개월로 유지됐지만 일부 혐의는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2심은 “ㄱ씨가 고소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받다가 매우 위축된 상태에서 동영상을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임의제출’이라는 형식하에 실제로는 ‘강제수사’가 행해진 건 아닌지 의심했다. 또 “임의제출 의사는 ㄴ씨가 고소한 범행에 관한 사진에 불과했을 것”이라며 “추가 범행을 증명하는 사진 또는 동영상까지 제출할 의사를 밝힌 것인지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ㄴ씨가 고소한 사건 이외에 추가 범행의 증거를 경찰이 압수한 것은 “위법 수집”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기록상 ㄱ씨가 동영상을 제출할 당시 위축된 상태였다고 볼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임의성(자발적 동의) 여부를 보다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데 원심은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피의자 신문조서 등에 압수 취지를 적었다면 압수조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위법이 아니라고도 판단했다. 대법원은 “옛 범죄수사규칙은 피의자 신문조서 등에 압수의 취지를 기재하고 압수조서를 갈음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압수조서 작성과) 압수절차의 적법성 심사·통제 기능에서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신문 때 경찰이 동영상을 제시하고, ㄱ씨가 촬영 일시, 피해 여성들의 인적 사항, 촬영 동기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대법원은 “실질적으로 압수목록이 교부된 것과 다름 없다고 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ㄱ씨 추가 범행의 증거가 ㄴ씨에 대한 범행과 장소·수단·방법·시기 등에서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추가 범행 증거가 범행의 상습성 등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로 사용할 수 있어서 ㄴ씨에 대한 불법촬영 범행과 관련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한편, 2심을 맡았던 재판장 오원찬 판사는 지난 2019년 레깅스를 신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판결문에 증거 사진을 첨부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2020년에도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의 2심을 맡아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하고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도 파기환송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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