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25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개최 일정과 장소를 발표하고 있다. 본인 제공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과거엔 팻말과 말, 구호를 통해 혐오를 드러냈다면, 최근엔 경찰, 법원이라는 공권력을 이용하고 있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배진교(47)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올해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예년보다 ‘유난한 축제 반대’를 마주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배 위원장은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 2009년부터 퀴어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대구는 서울에서 2000년 퀴어문화축제가 처음 열린 뒤, 바통을 이은 곳이다. 올해로 15회를 맞은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우리는 이미’라는 구호 아래 17일 동성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다.
배 위원장은 15년째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보수 기독교 단체가 중심이 된 성소수자 혐오를 온몸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올해는 혐오의 농도가 다르다.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쪽이 배 위원장을 불법도로점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또 퀴어문화축제를 막기 위해 대구지법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가세해 축제당일 축제 장소를 지나는 버스 노선을 우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배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이제는 수사기관 고발, 법원에 소장 제출 방식으로 공권력을 혐오에 이용하고 있고, 시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장이 오히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며 “지난 2015년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 때 한 기독교회 장로가 축제 참가자들에게 오물을 투척했던 일보다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장까지 가세한 성소수자 혐오에도 올해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예정대로 열린다. 대구지법은 15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라며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쪽이 낸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배 위원장은 또 최근 각 지자체가 퀴어문화축제 장소 사용을 불허한 일을 언급하며 “지자체가 나서 퀴어 축제를 방해하는 것은 행복 추구권,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와 강원도 춘천시는 서울·춘천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과 의암공원 사용을 청소년 축제 개최 등을 이유로 불허한 바 있다.
사진은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18년 6월23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퍼레이드(행진)을 이끌고 있는 모습. 당시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집단이 행진 트럭을 막아서는 일이 있었다. 본인 제공
배 위원장은 “혐오세력이 처음엔 퀴어축제 현장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다’ ‘회개하라’와 같은 종교적 구호를 많이 외쳤고, 축제 참가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파손시키는가 하면, 현수막을 찢거나 퀴어퍼레이드(행진) 트럭 앞을 막아서는 등 물리력을 행사했다”며 “지금은 ‘축제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한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와 같은 말로 혐오를 포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혐오를 드러내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2009년 대구에서 첫 퀴어축제를 열 때만 해도 ‘동성애’라는 말이 금기시됐다. 행진하다가 돌팔매를 맞는 것 아닌가 하고 굉장히 두려웠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같은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행진하다 보면 차 안에서, 카페 창가에서 우릴 향해 손을 흔들어주시는 분들이 많다. 더디지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특히 올해 2월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고, 혈연 또는 혼인으로 결합하지 않은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또 나화린 선수의 등장으로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권이 공론장에 올랐다. 이처럼 일상 속 차별을 없애기 위한 변화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라도 퀴어축제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배 위원장 생각이다.
그는 “성소수자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성소수자가 살면서 마주하는 여러 장벽과 차별, 혐오를 하나씩 철폐해나가는 사회 운동이 퀴어축제”라며 “참가자들이 축제다운 축제,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축제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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