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 대법관 후보 “2년간 관계 맺은 로펌 사건 회피할 것”

“비밀유지 위반 소지” 로펌 법률의견서는 제출 안해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준(53·25기)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면 다수 사건에 ‘회피신청’을 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되기 전 2년간 고문을 맡거나 자문을 제공했던 법인을 이해관계 당사자로 간주하고, ‘직무관련 자가 이해관계자’라는 사실을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권 후보자는 최근 2년간 대다수 국내 대형 로펌들에 법률 자문을 제공했기 때문에 해당 로펌들이 대리하는 사건들은 모두 신고 대상이 된다. 대법원장은 직무 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면 재판에서 권 후보자를 배제해야 하고, 이런 경우가 많아지면 권 후보자가 대법관으로서 직무 수행을 원활히 하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 후보자는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가 관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해도, 관계를 맺은 로펌의 사건은 모두 신고하고 회피 신청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5월 새로 생긴 이해관계충돌법은 공직자로 채용·임용되기 전 2년 이내에 공직자 자신이 대리하거나 고문·자문 등을 제공했던 개인·법인·단체를 ‘사적이해관계자’로 규정한다. 이들과 직무로 엮이면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고, 업무 회피 신청을 낼 의무를 부여한다.

권 후보자는 최근 2년간 자신이 의뢰를 받아 법률의견서를 제출한 로펌은 모두 4곳이라고 밝혔다. 권 후보자는 “최근 2년 내에 법률의견서를 낸 곳이 모두 5곳인데 그중 한곳은 국내 소송을 안하는 곳이라 사실상 4곳”이라고 말했다. 5곳은 김앤장·태평양·피터앤김·세종·바른이다. 이들 로펌이 대리하거나 관계된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모두 회피신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형 로펌과 관련된 사건이 (대법원에) 많을 텐데 모든 사건을 회피하고 재판에 임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권 후보자는 “직무수행을 하지 못할 정도인지에 대한 판단은 소속기관장인 대법원장이 판단하게 돼 있다. 다만 저는 해야 할 몫을 충분히 하기 위해 회피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권 후보자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으면서 지난 2018∼2022년 대형 법무법인(로펌) 7곳의 의뢰로 법률의견서 63건을 제출하고 18억여원을 받은 점도 논란이 됐다. 권 후보자는 이날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고액의 소득을 얻게 된 점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질의를 시작하기 전에 권 후보자에게 법률의견서 제출을 거듭 요구했지만, 권 후보자는 해당 법무법인과의 비밀유지의무 위반 소지가 있어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권 후보자는 지난 2018년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소송 중이던 하나금융지주 쪽 법무법인 태평양의 의뢰를 받고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법률 의견을 제출한 사실은 사실상 인정했다. 권 후보자는 “지난 2018년에 태평양에 제출한 의견서가 론스타와 하나금융 사이의 소송이 맞느냐”는 질문에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다”면서도 “제가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중재 사건에서 일부 민법 쟁점에 대해서 의견서를 제출한 바가 있다”고 답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당시 태평양이 하나금융을 대리한 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론스타와 우리 정부의 분쟁에선 정부를 대리했던 점을 지적하며 “태평양은 하나금융이 (론스타와의 소송에서) 이기면 한국 정부가 불리하게 되는 일종의 이해 상충 상황이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정부와 하나금융을 동일한 로펌이 대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하나금융과 대한민국의 입장 사이에는 모순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연서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