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53·25기) 대법관 후보자는 민법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양창수 전 대법관과 함께 펴낸 <권리의 변동과 구제:민법2>는 법학 강의 교재로도 쓰인다. 우리 사회 가족관계·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권리에 대한 규정을 다루는 권 후보자의 연구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보는 그의 견해가 드러난다. 권 후보자는 30여권의 단행본과 80여편의 학술논문을 냈다. 2016년부터는 대법원의 주요 민사 판결·결정에 대한 평석도 냈다. 10일 <한겨레>는 권 후보자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연구자료 40건과 2020년~2022년 판례 평석을 분석해 권 후보자의 성향을 살펴봤다.
■ ‘표현의 자유’ ‘경영판단의 자유’ 중시
권 후보자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2012년 2월 논문 ‘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에 관한 저축은행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에서 경영상 판단에 대한 법원의 과도한 개입은 기업가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썼다. 2011년 대법원은 여신담당 이사의 대출 부실 결정·관리로 회사가 파산에 이르렀다며 해당 이사의 일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놨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이런 판결이 일반화될 경우 “경영판단 원칙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과 법치주의 정신의 조화로운 균형이 허물어질 수도 있고” “경영판단을 위축시킬 개연성도 크다”고 봤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인터넷 공간의 현실에 맞게 표현의 자유 영역을 확대하면서도 자율적 규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권 후보자의 시각이다.
가해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액보다 많이 배상 책임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과도하게 인간의 행동을 제약한다며 부정적 견해(‘불법행위법의 사상적 기초와 그 시사점’·2009)를 보였다. 권 후보자는 “(불법행위를) 예방하려면 적절한 행위로 유도할 요인을 제공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행위 자체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지라도 행위를 최적의 수준으로 유도하는 효과는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 “입법-사법은 동업관계”
권 후보자는 행정·입법부를 적극 견제하는 ‘사법적극주의’ 성향을 보인다. 그는 2017년 ‘2016년 민법 판례 동향’을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는 동업자의 관계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남겨놓은 공백을 메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1년 법조인 정보 공개사이트인 ‘로앤비’가 변호사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를 그 어설픔과 왜곡 가능성을 지적하며 막는 것이 맞느냐”며 “대법원 판결 태도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3년 진도군 민간인 희생자 국가배상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법원이 다시 사실관계를 따져보라고 한데 대해선 “피해자 구제 필요성을 경시했기 때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권 후보자는 사법부가 정부의 결정을 따르기보다 면밀하게 검토·견제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 셈이다.
■ “법관과 사회평균인 간극 줄여야”
권 후보자는 “법관은 일상 속의 행위를 판단할 때 자신의 관점을 사회 평균인의 관점에 일치시켜야 한다”(‘불법행위의 과실 판단과 사회평균인’·2015)고도 강조했다. 개인의 사정과 현실을 세심하게 고려한 법관의 적극적인 판단을 지지하며, 보통사람으로서의 관점이 그러한 세심한 판단의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견해다.
한편, 권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으면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대형 법무법인(로펌) 7곳에서 의뢰를 받아 법률의견서 63건(사건 38건)을 제출하고 18억여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이 대평 로펌의 상고심 사건을 다수 다룬다는 점에서 권 후보자의 적격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11일 권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이런 활동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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