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이 장관 파면 촉구 기자회견에서 희생자 이상은씨 어머니 강선이씨가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후 9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은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 1월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은 더딘 재판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6개월 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검찰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아직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소방 등 공무원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참사 예방 및 구조 조치 미흡(업무상 과실치사·상) ②참사 이후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보고서 삭제(허위공문서작성·행사 및 증거인멸·교사)다.
■ 느림보 재판에 책임자는 ‘보석 석방’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송치한 공무원은 모두 16명이다. 검찰은 경찰 일부(용산서장·용산서 112상황실장·용산서 112팀장)와 용산구 관계자(용산구청장·부구청장·안전재난과장·안전건설교통국장) 등 총 7명을 기소했다. 이태원역장과 서울교통공사 동묘영업사업소장 등 2명은 ‘무정차 요청’ 사전 공문을 받지 못했던 점 등을 들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 등 경찰 5명(허위공문서작성·행사 피고인 포함)과 박 구청장 등 용산구 관계자 4명의 재판은 지난 3월에 시작돼 공판준비기일 2차례, 공판기일 3차례가 진행됐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재판이 열린 셈이다. 재판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구속된 6명 모두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6~7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불면과 공황장애를 이유로 박희영 구청장이 풀려나 업무에 복귀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6월2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박 구청장의 사퇴와 신속한 재판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지금 같은 속도면, 재판은 1년을 훨씬 넘길 것이 명백하다. 재판 지연 사태 앞에 유가족은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용산구 공무원 재판과 경찰의 정보보고서 삭제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물리적 시간 부족을 재판 지연의 이유로 설명했다. 재판부는 “우리 재판부가 주요 사건 150여건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월요일은 그래도 가장 중요한 사건인 이태원 사건에 온전히 할애한다. 월·수·금(3일을) 다 이태원 사건 재판을 진행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7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석방 규탄 및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세월호 수사 외압’과 닮은꼴 ‘대검 의견 제시’
검찰의 행보는 더 느리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 정대경 전 서울청 112상황3팀장과 이태원파출소 1·2팀장 등 경찰 책임자들을 넘겨받았으나 6개월이 넘도록 검찰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특수본이 사건을 보낸 직후인 1월에는 김 청장 집무실을 두 차례 압수수색하고, 4월에는 김 청장을 두 차례 불러 조사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마무리 단계’로 꼽히는 피의자 소환조사 이후 더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 와중에 지난 5월 <한국방송>(KBS)은 “경찰과 검찰 수사팀 모두 (김 청장에 대해) 구속 의견을 냈지만, 대검찰청이 구속영장 청구는 물론 기소까지 미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법무부의 수사 외압 의혹을 떠올리게 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참사 현장에 현장책임자인 김경일 해경 123정장을 수사하던 광주지검 수사팀에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법무부의 의견 제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대검은 ‘법리 검토를 위해 전문가 등 다방면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했다. ‘의견 대립’이 아닌 수사를 보완하기 위한 ‘정상적인 소통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용산서장이라는 현장책임자가 있는데 서울청장에게 형사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와 관련해 법리 검토할 것이 아주 많다”며 “증거, 사실관계, 법리 외의 ‘방향성’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일본 아카시 불꽃축제와 영국 힐스버러의 압사 사고 등 해외 사례에서도 경찰지휘부의 형사 책임이 인정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김 청장 외의 경찰·소방 실무자들에 대한 처벌도 늦어지고 있다. 서울서부지검은 “공동의 과실에 의한 사건이어서 어느 한 사람만 선제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선고일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장관 탄핵심판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정무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이날 나온다.
■ 참사 축소·은폐 의혹 재판은?
참사 이후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 관련 재판들도 여럿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1심 선고가 난 사건은 없다. ‘수사·감찰·언론취재에 대비 규정에 맞지 않는 문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용산서 정보과장, 이를 수행한 용산서 정보과 직원은 증거인멸 및 교사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용산서장, 용산서 여성청소년과장, 용산서 생활안전과 경위, 용산구청장, 용산구 보건소장의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도 재판도 진행 중이다.
앞서 경찰 특수본은 행정안전부, 서울시, 경찰청, 서울시자치경찰위원회에 대해선 법리검토 결과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상민 장관은 입건됐으나 불송치됐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 전 조사가 종결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범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파출소, 용산소방서, 소방방재센터 직원들의 직무상 비위는 기관 통보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난 2월8일 국회가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의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25일 이 장관 탄핵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결과는 오후 2시께 나올 예정이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