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씨와 신아무개씨가 19일 새벽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씻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씻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깨끗하고 적당한 온도의 물이 확보되어야 하며, 거동도 자유로워야 한다.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약자는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권리다. 개인의 위생과 청결은 건강권과 직결된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환대 받을 수 있는 최소 요건을 부여하는 요소다. 한겨레가 가장 최소한의 기본권인 ‘씻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과 장소를 발굴해 기록한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200번 넘게 타고, 내리고, 던지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주민들이 잠들어 있는 밤시간 동안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5천여가구의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려면 1초도 낭비할 틈이 없다.
8년차 청소노동자 김아무개(39)씨가 5t 트럭을 몰고 좁은 골목을 비집다 음식물쓰레기 수거통을 발견하면, 조수석에 앉은 1년차 신아무개(27)씨가 용수철처럼 튀어 내렸다. 신씨는 트럭으로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재빨리 던졌다. ‘던져야’ 정해진 7시간 안에 일을 끝낼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 수거가 제때 끝나지 않으면 구청에 민원이 들어오거든요.” 터진 봉투에서 새어 나온 음식물쓰레기 오물이 신씨의 얼굴로 튀었다.
지난달 12일 새벽 4시, 7월 폭염으로 달궈진 아스팔트는 간밤에도 그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후텁지근했다. 전날 밤 11시부터 골목을 누비며 400여번 허리를 숙였다 편 탓에 안전모 사이로 흘러내린 땀이 두 사람의 목덜미까지 흥건히 적셨다.
김씨는 수분마저 바짝 말라버린 물티슈를 뽑아들었다. 메마른 물티슈에 생수를 잔뜩 적셔 땀으로 찌든 얼굴과 목덜미, 팔을 순서대로 닦아냈다.
“이렇게 바로 안 닦으면 눈에서 다래끼 나요. 다른 건 몰라도 퇴근할 때 샤워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오죽하면 물티슈로 씻는 달인이 됐다니까.” 올해 일을 시작한 신씨 역시 선배 김씨를 보고 물티슈로 몸 닦는 법을 배웠다.
서울 용산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오아무개(56)씨가 지난달 19일 오전 쓰레기 수거차량에서 물티슈로 간단히 씻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건강권과 직결되는 ‘씻을 권리’
노동자에게 ‘씻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땀을 씻어내는 것을 넘어 건강권과 연결되는 문제다. 특히 청소노동자의 경우 업무 특성상 폐기물 등을 처리하기 때문에 오염물은 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해·유독물질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유일한 해법은 오물을 빠르게 씻어내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샤워실 마련 등 씻을 권리 보장은 청소노동자들에겐 손에 닿지 않는 권리다.
두 사람은 땀을 빨리 날리는 기능성 원단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기능성 원단이 몸에 밴 시큼한 쓰레기 냄새까지 날려주진 못했다. 쓰레기와 땀 냄새가 두 사람의 몸과 차량에 밴 탓에 창문을 닫고 이동하는 건 고역스럽다. 신씨가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양손을 걸쳤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냄새가 빠질까 싶어서요.”
두 사람이 겨우 물로 손 씻을 공간을 발견한 시간은 새벽 5시 무렵.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거리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모두 트럭에 옮긴 뒤였다. 두 사람의 이동 동선 안에서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거리의 공중화장실뿐이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선 두 사람은 얼굴과 팔에 맺힌 땀과 이물질을 벅벅 씻어냈다. 화장실에 비누나 세정제가 없는 경우엔 급한 대로 물로만 닦아낸다.
서울 용산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씨와 신아무개씨가 19일 새벽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씻을 공간이 마뜩잖다 보니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감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년째 청소일을 해온 오아무개(56)씨는 “깨진 유리 조각이 든 쓰레기 봉투를 모르고 들었다가 팔과 다리에 상처가 나서 피가 나도 급한 대로 트럭에 둔 생수병의 물이나 물티슈로 닦아내는 게 전부”라며 “제때 상처를 씻어내고 소독할 수 없어 온갖 세균에 감염되는 게 제일 위험하다”고 말했다.
■ 씻을 시간과 공간의 부재
이는 일부 청소노동자들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한겨레가 7월17~28일 약 2주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환경분과 소속 청소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씻지 못해 고충을 겪었던 이들은 72%에 달했다.
이들은 씻지 못한 탓에 타인에게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59.5%·중복 응답), 35.7%는 피부 질환을 겪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41.7%)거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진 적이 있다’(32.1%)는 이들도 10명 중에 3~4명에 이른다. 일부는 ‘왜 씻지 않느냐’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고도 답했다.
이들이 씻지 못하는 이유(중복 응답)는 명확했다. 2명 중 1명은 ‘씻을 공간이 없다’(48%)고 답변했고, 34%는 ‘씻을 시간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마련된 씻을 공간도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자 절반(중복 응답)은 직장 내 샤워 시설을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청결하지 않다’(44.7%)를 꼽았다. 공간이 협소하다는 이유가 30.3%로 두번째로 많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이용해야 하는 것이 불편해서’(19.7%), ‘같은 건물 이용객들이 화장실 사용을 꺼려한다’(10.5%)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세면·목욕시설 및 화장실 설치·운영 가이드’는 사용 빈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청소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셈이다.
새벽 6시께 ‘야근조’였던 김씨와 신씨가 일을 마치고 차량 반납을 위해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차고지’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씻을 공간이 없긴 퇴근 공간인 이곳도 마찬가지다.
차고지에 마련된 컨테이너 건물은 두 사람이 속한 하청업체가 주간조(아침 7시~오후 5시)와 야간조(밤 11시~새벽 5시30분) 각각 10여명의 청소노동자가 작업복을 갈아입거나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청소노동자 ㄱ씨는 “손이라도 씻으려면 세면대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곳에서 물이 나오는 곳은 식수용 정수기가 전부”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신아무개씨가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씻지 못하고 퇴근하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시민들로부터 욕설과 비난을 듣거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리기도 한다.
신씨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길까 봐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베테랑 오씨도 “물티슈로 손·팔·얼굴을 아무리 닦아내도 냄새가 잘 안 빠진다. 냄새 빼려고 일부러 퇴근하고 나서도 한참을 차고지에 머물다 가곤 한다”며 “집에서 가져온 새 옷으로 갈아입어도 머리카락까지 밴 냄새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계급 따라 다른 씻을 권리
같은 청소노동자더라도 직고용 여부에 따라 씻을 공간 확보와 관리에 차이도 났다. 서울 시내 주요 구청은 샤워·화장실 등이 포함된 휴게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구청이 직고용한 환경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데 그쳤다. 하청노동자를 위한 씻을 공간은 개별 업체에 맡기고 있었지만 관리·감독에 소홀했다.
김씨와 신씨가 일하는 용산구는 샤워실·화장실이 설치된 휴게실 11곳을 운영 중이지만, 모두 공무원용이다. 구청은 하청업체와 계약할 때 ‘샤워실과 휴게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지만 현장에선 전혀 모르는 얘기다. 마포구청도 하청업체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게 공간은 개별 업체에 맡겨둔 상태다.
도봉구 하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 ㄴ씨는 “비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구청 쪽에 2년 전부터 요구했지만, ‘부지가 없다’며 여태껏 휴게실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용산구 하청업체 청소노동자 ㄷ씨도 “근무 장소와 먼 샤워실은 있어도 소용이 없다. 퇴근할 때 샤워할 곳이나 일할 때 잠시 쉬거나 씻을 공간이 동마다 1개씩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