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찾은 서울 중구의 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20∼30명이 한 번에 사용하는 이곳은 화장실 겸 샤워실 겸 세탁실이다. 곽진산 기자
지난 26일 한겨레가 찾은 서울 중구 청소노동자 휴게실 옆 샤워실은 2평 남짓한 공간에 변기와 샤워기, 세탁기가 가림막도 없이 다닥다닥 놓여 있었다. ‘샤워기 구색만 갖춰진’ 사실상 화장실인 이곳을 20~30명의 청소노동자가 이용하는 탓에 샤워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청소노동자 조상희(56)씨는 “옷도 빨고 화장실로도 써야하니 샤워는 어렵다”며 “대부분 공중화장실이나 집에서 샤워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와 도봉구 사정은 더 나빴다. 구로구는 용역업체가 모두 7곳의 휴게실(샤워실)을 운영한다고 보고했지만, 이곳 소속 청소노동자 김아무개(53)씨는 “휴게실이 4곳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마저도 2곳은 물이 깨끗하지 않아 샤워실로 쓸 수 없다”고 했다. 도봉구도 집계상으로는 휴게실이 3곳 있지만, 정작 씻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서울시가 25개구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운영실태를 취합한 결과, 155곳 가운데 8곳은 샤워실은 물론 화장실조차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개선에 나섰다.
지난 8월 한겨레 ‘씻을 권리’ 보도 이후 서울시는 이런 대책을 내놨지만, 더 많은 휴게실이 열악한 환경 등을 이유로 사실상 사용되지 않아 추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7월 서울 용산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신아무개씨가 서울 용산구의 한 공원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25개 구청 ‘청소노동자 휴게실 현황’ 자료와 서울시 설명을 종합하면, 구청이 용역을 준 청소노동자 고용업체의 휴게실 155곳 가운데 용산구 2곳, 종로구 1곳, 동대문구 2곳, 성북구 1곳, 노원구 1곳, 은평구 1곳 등 총 8곳은 샤워실은 물론 화장실조차 없이 운영 중이었다.
한겨레 보도 뒤 지난 9월 용산구(2곳)의 현황을 파악한 서울시는 우선 이달 말 용산구청에 약 1억1000만원의 예산을 전달해 휴게실 시설을 개선할 예정이다. 나머지 6곳도 이르면 올해 휴게실 개선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사실상 이용되지 않는 ‘유령 휴게실’이다. 155곳 중 나머지 147곳은 샤워실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창고로만 쓰여 휴게실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까지 포함돼 있었다.
구청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휴게실이 6곳 있다고 보고한 동대문구청은 “휴게실 2곳은 창고로만 쓰인다. 사실상 쓰지 않는 곳이라 샤워실도 추가로 설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휴게실 5곳이 있다고 한 은평구청 역시 “운전하시는 분들이 거점으로 쓰는 1곳은 휴게실로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지난 8~9월 두 차례 수요조사를 했지만) 업체 쪽에서 휴게실에 샤워실이 있다고는 대답하기 때문에 (실질 사용 현황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내년에는 샤워실이 있는 곳이라도 환경이 부실할 경우 개선하겠다”고 했다.
기호운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활동가는 “서울시에서 설치하라고 하니 업체가 차고지 등을 휴게실로 등록해놓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휴게실은 몇 곳 없다”며 “숫자만 파악할 게 아니라 실제로 쓰기 어려운 곳들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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