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할 수만 있다면….” 노숙인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여성 도니스 산도발은 거리 노숙인들에게 ‘씻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비영리기관 ‘라바메이’(LavaMae)를 세웠다. 라바메이는 차량을 개조해 이동식 목욕시설을 만들었다. 산도발은 ‘뜨거운 샤워의 회복력’을 믿었고, 씻는다는 것을 ‘존엄할 권리’라고 인식했다. 그렇게 20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노숙인들의 ‘첫 목욕’이 시작됐고, 10년간 3만2500명 이상이 8만6500번의 목욕을 했다.
노숙인의 ‘씻을 권리’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이들의 열악한 위생 상태가 자립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모바일 커뮤니티 샤워 앤 웰니스 서비스’ 대표는 “한달간 목욕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엄청난 냄새가 나서 그를 돕기가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며 목욕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선단체 ‘샤워업’,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활동하는 ‘원보이스’ 등 그 밖의 많은 자선단체도 같은 이유에서 ‘씻을 권리’를 주장한다. 샤워업은 “열악한 위생 상태는 외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질병에 더 취약하게 만들며 심지어 자존감을 해칠 수도 있다”고 했다. 원보이스는 노숙인이 거리의 공중화장실에서 급하게 몸을 씻으며 “나는 안전한가”라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노숙인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 ‘샤워할 권리’는 수익의 30%를 이동식 목욕 차량을 지원하는 데 쓰며 “씻는다는 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민간 후원과 자원봉사로 운영되던 라바메이는 예산 부족으로 지난 6월 사업을 중단했지만, 노숙인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은 캐나다, 독일, 필리핀 등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서울시가 시행 중인 이동목욕차 사업도 국외의 이런 시도를 참고하며 시작됐다. 2020년 12월 서울시가 발간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거리 노숙인들은 ‘추위와 더위’(43.4%), ‘사생활 보호’(34.7%), ‘화장실·샤워실 이용’(25.4%) 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피부 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위생을 위해 목욕을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자주 씻는 행위 등이 습관화되면 자신을 관리하는 것 자체만으로 자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활동하는 한 거리상담가도 “길바닥에서 자면서 더러운 것에 익숙해지면 냄새가 나도 신경 쓰지 않고 무기력해진다”며 “지원 시설까지 찾아올 힘이 없는 거리 노숙인들에게 ‘씻을 기회’를 제공하면 다른 삶을 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노숙인들에게 씻을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동식 목욕 차량을 안내할 수도 있지만 안전한 노숙 장소를 만들고 샤워시설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특히 코로나에 취약한 거리 노숙인들을 위해 ‘세이프 슬립 빌리지’를 만들고 약 20명당 1개의 샤워시설을 설치했다. 한겨레가 만난 여성 노숙인은 “머물 장소를 정해주고 드나들 수 있는 목욕 시설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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