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치매 등을 진단하는 것이 의료법상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진단용 의료기기 ‘뇌파계’를 사용했다가 1개월 15일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한의사 ㄱ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자격정지처분 및 경고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ㄱ씨는 2010년 서울 서초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중 진단용 의료기기 ‘뇌파계’를 의료행위에 사용했다. 뇌파계는 환자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파를 증폭한 뒤 이를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해 뇌의 전기적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 치매나 파킨슨병 진단에 사용된다. 이 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위해도 2등급 허가를 받았다. 사용 중 생명의 위험이나 중대한 기능장애에 직면할 가능성 등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의료기기라는 의미다.
ㄱ씨가 뇌파계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한 경제지 기사에 ㄱ씨가 뇌파계로 환자의 파킨슨병 여부를 진단하는 사진이 실리면서 알려졌다. 2012년 4월 복지부는 ㄱ씨에 대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도 받지 않았다”며 3개월 자격정지처분과 경고처분을 내렸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재결을 거쳐 자격정지 기간이 1개월 15일로 단축됐지만 ㄱ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뇌파계를 이용한 진단이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의료관계법령에서 ‘의료행위’나 ‘한방의료행위’에 관한 적극적인 정의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어떤 진료행위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고, 한의사만 할 수 있는 한방의료행위인지는 결국 학문적 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뇌파계를 이용한 진단 행위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2심은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어떠한 규정도 없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뒤집었다. 2심은 “뇌파계 사용에 특별한 임상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위해도도 높지 않으며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하지 않는 점에 비춰보면,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하며 ㄱ씨의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행위에 대해 위해성이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했다. 앞선 판례에서 제기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 범위 판단 기준은 △관련 법령에서 금지되는지 여부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 △한의학적 원리의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여부 등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대한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초음파와 뇌파계 등 다양한 현대 진단기기 적극 활용해 국민 건강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고 장차 보건의료에 심각한 위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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