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리는 을지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남성 최아무개(구속)씨에게 너클로 폭행을 당한 뒤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이 지난 19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사건 발생 이틀 만이었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곳(공원)을 자주 다녀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범행 장소로 정한 것”이라며 “강간하고 싶었다”고 범행을 인정했다. 여성을 노린 전형적인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였다.
피해 여성 사망 다음날인 20일, 여가부는 에이(A)4용지 두장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김현숙 장관이 새만금 잼버리 기간 동안 야영지 밖 신식 숙소에서 지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이었다. 여가부는 보도자료에서 “김 장관이 잼버리 영지 현장에 머물며 영지 시설을 점검하고 안전한 행사 진행에 최선을 다했다”며 “숙영하려고 했으나 신변 위협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낮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살인 범죄가 발생했지만, 보도자료에는 ‘여성폭력 방지 대책’을 맡고 있는 주무부처로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이 사건과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한 줄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로지 ‘장관 보호’에만 신경을 쓰는 것으로 비쳤다.
사건 발생 4일이 지났지만, 김현숙 장관을 비롯한 여가부는 이 ‘죽음’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21일 오전 열린 브리핑에서 ‘김 장관이 신림동 여성 성폭력 살인사건 현장에 방문할 것이냐’, ‘이 사건과 관련해 여가부가 대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여성안전 주무부처로서 여성안전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챙기고 더 확실하게 지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조민경 여가부 대변인)는 원론적 답변만 돌아왔다.
김 장관의 그간의 행보를 보면, 여성 대상 폭력에 미온적인 여가부의 대응이 새삼스럽지 않다. 여성 대상 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인데도, 김 장관이 그에 한참 못미치는 인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발생한 ‘인하대 여성 성폭력 살인사건’에 대해 “(학생) 안전의 문제”라고 표현해 비판을 받았고, 지난해 9월 ‘신당역 여성 스토킹 살인사건’ 때는 “이 사건을 ‘젠더 갈등’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가부 장관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 여성대상 폭력을 ‘그냥 폭력’으로 단순화하는 수장을 둔 여가부. 여가부가 제역할을 못하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여성대상 폭력이 발생했을 때 폐회로텔레비전 설치 확대, 치안 취약지역 순찰 강화 등이 대책으로 많이 거론된다”며 “여성대상 범죄 예방에 있어 치안 인프라 구축은 일정 정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런 여성대상 범죄 예방책이 물리적 환경 개선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대상 폭력이 남성이 여성에게 힘을 행사해도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여가부 장관에게 듣고 싶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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