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남 지역에서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금서 지정’ 운동에 인권단체들이 ‘검열’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회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 성교육·성평등 도서 17권을 콕 집어 현황을 보고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서교사들은 “이러한 조사는 검열이면서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반발했다.
2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8일 이 지역 초중고에 ‘시의원 요구자료 제출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 ‘성교육 관련 도서 17권’의 각 학교 도서관 비치 현황, 구입 시기, 구입 가격, 도서명, 출판사, 총 구입 가격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이상욱(국민의힘·비례)·서호연(국민의힘·구로구) 서울시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한 자료로, 해당 시의원들은 공문에 자신들이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원들이 지목한 17권의 책은 ‘여자사전’ ‘사춘기 내 몸 사용설명서’ ‘걸스토크’ ‘어린이 페미니즘’ ‘10대를 위한 빨간책’ 등으로 극우 기독교 성향 학부모 단체들이 열람 제한·폐기를 요구했던 성교육·성평등 도서 114권 중 일부에 해당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에 보낸 공문 내용 일부.
이에 대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이덕주 사서교사위원장은 “사서교사는 교육과정에 따라 도서선정활용에 따른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고 있는데, 이런 조사를 하면 교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조사는 검열이면서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막 한 시점에서 수업 계획과 평가 계획 등을 제출해야 하는 등 업무 부담이 큰 데, 명확한 조사 목적도 밝히지 않은 시의원들의 이러한 자료 요청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악성 민원’이 활발해지자,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서도 ‘금서’를 읽자는 제안들이 있었다. 사진은 ‘학교도서관저널’에 매달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이라는 주제로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는 작가 ‘예민한 도서관’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앞서 충남 지역에서는 김태흠 도지사가 “(성평등 도서)‘나다움책’ 7종 도서를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도의회에서 발언해 논란이 됐다. 또 충남 도지사 소속 감사위원회가 이 지역 공공도서관에 성평등·성교육 도서 143권의 열람 가능 여부와 연령대별 대출 횟수를 취합해 보고하라고 공문을 보내 지자체가 도서관 ‘검열’에 간여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한편, 극우 기독교 성향 학부모들의 반복적인 민원에 일부 충남 지역 도서관들이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열람을 제한한 가운데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외 13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23일 충남도, 충남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들에 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검색 제한·열람 제한 등과 같은 일체의 제한을 없애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13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공문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 배제 요구는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을
비롯해서 양육자와 교육자,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안전하고 평등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근거 없이 성평등·성교육 도서의 열람을 제한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공문에 성평등·성교육 장서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붙여 보내면서 각 공공도서관에 신속한 조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