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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바닥 나뒹구는 추모 목소리…이태원 참사현장 정비 ‘제자리’

등록 2023-08-24 05:00수정 2023-08-24 08:11

용산구청 무관심에 정비 사업 지지부진
대책위 “참사 1주기 전 가시적 결과 있기를”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참사 300일째 되는 날 하루 앞두고 왔습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죄스럽습니다.’

빗줄기가 쏟아진 23일 낮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골목 초입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엔 여전히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골목 벽면 한쪽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위에 ‘늦어서 죄스럽다’면서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겠다는 약속의 메모가 이날 하나 더 덧붙었다. 일부 포스트잇은 빗물에 글씨의 형체조차 알 수 없게 돼버렸지만, ‘기억은 힘이 셉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벽면 아래 빽빽이 붙은 추모 메시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시민들은 빗속 추모를 멈추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59명의 희생자를 낸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로 300일이 됐다. 아직 참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참사 현장을 찾는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관할 구청인 용산구의 무관심 속에 유가족과 상인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했던 회복과 기억, 추모를 위한 공간 조성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현재 참사 현장에 위치한 추모 공간은 해밀톤호텔 골목의 벽면뿐이다. 참사 직후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뒤덮었던 추모 물품들은 관리상의 문제로 각지에 흩어져 임시 보관 중이다. 골목 벽면 아래 놓인 책상과 서랍에는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펜과 포스트잇이 구비됐다.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자비로 채워 넣은 것들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붙어있는 메시지들이 빗물에 번져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붙어있는 메시지들이 빗물에 번져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21일 이곳을 찾은 용산구 주민 박아무개(31)씨는 “이렇게 글들이 모아져 있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이런 포스트잇도 고인을 기리는 방법의 하나인데, 이런 공간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 일본인 부부는 서툰 한국말로 “여기가 참사가 일어났던 곳이냐”고 묻더니 짧게 묵념을 하고 갔다.

하지만 이곳도 비바람 및 인위적 훼손 등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라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추모객은 “틈나는 대로 떨어진 포스트잇을 수거해 서울시청의 희생자 분향소나, 시민대책회의에 전해주고 있다. 역사적 기록물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추모 공간에 취객이 구토해서 치우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다. 비가 오면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비닐을 설치하느라 고생”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추모공간에 추모메시지들이 떨어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족과 상인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했던 참사 현장 정비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두 주체는 지난해 12월 손을 맞잡고 희생자 추모 공간 조성을 요구했지만, 용산구청은 논의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참사 책임자인 박희영 구청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정비 사업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유가족들의 반발을 샀다.

보다 못한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는 지난 8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을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 이름 붙이고, 용산구청에 참사 현장에 대한 중간정비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구청은 이후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쪽에 ‘최대한 유가족의 입장을 존중하는 쪽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상태다.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용산구청이 제대로 된 논의를 안 해오다가 이제 제대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며 “참사 1주기 전에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 발생 299일째인 23일 낮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 한 켠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모메시지를 적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강신범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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