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24일로 발생 300일째를 맞지만, 참사를 계기로 마련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이행률은 9%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정부가 조처를 완료했다고 보고한 사안에서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기도 했다. 추진 속도가 빨랐다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책들도 있었다.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제10차 추진상황 진도점검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선정한 89개 세부과제 가운데 8건(9%)만 조처를 완료했고, 나머지 81건은 여전히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7일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열었고, 이후 ‘범정부 안전시스템 개편 티에프(TF)’를 구성해 ‘범정부 안전시스템 개편’을 추진해왔다. 지난 3월 말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최종안이 마련돼 각 부처에 전달됐다.
지난달 기준 ‘조처 완료’ 판단을 받은 건 주로 일회적인 조치들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 불법 건축물 관련 협조를 요청하거나 시민안전보험 보장 대상 확대, 위기관리 소통 가이드라인 제작·배포 등이었다.
해당 부처에서는 ‘완료’로 판단했지만, 비슷한 사고가 재발해 ‘계속 추진’으로 재판단받은 사안도 있었다. ‘수도권 전철 혼잡 완화 방안’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29일 서울시 등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해당 방안을 수립했다며 ‘완료’ 보고를 했지만, 다음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에서 호흡곤란으로 승객들이 쓰러졌다. 이후 행안부는 추가 대책을 마련하라며 ‘계속 추진’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유가족 맞춤형 지원체계 확립’ 과제도 10·29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 등을 고려해 경찰이 시신·유류품 처리지침을 마련하고 배포·교육하는 선에서 완료했다고 보고했지만, 행정안전부는 미흡하다고 보고 ‘계속 추진’하라고 통보했다.
서둘렀다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을 예방할 수 있었을 과제도 눈에 띄었다. 침수위험지역 발굴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지하공간 침수 방지 대책’은 반지하 등 공동주택에만 대책이 집중되면서 지하차도 관련 대책은 추진된 게 없었다.
‘위험상황 시 신속한 주민대피 체계 구축’ 과제도 마찬가지다. 행안부 외 긴급재난문자 발송 권한 확대, 내비게이션을 통한 위험정보 실시간 안내 확대 등이 담겨 있지만 일부 시·도에서 시범 운영하는 데 그쳤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침수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지 않아 침수가 시작된 뒤에도 차량 진입이 계속됐다. 지자체 재난안전상황실 상시 운영체계 구축, 재난안전 폐회로텔레비전(CCTV) 공유, 지역안전지수 개선 등도 이제야 추진을 시작하는 단계다.
서울 신림동 대낮 공원 성폭행 사건 이후 서울시 등이 내놓고 있는 대책도 당시 제시된 ‘안전 과제’에 포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공지능형 폐회로텔레비전 사업이 대표적인데, 연구개발 용역이 예산 확보 문제로 늦어지면서 이번달 말에야 연구자 선정에 들어간 상태다. 사고 위험 보행 환경, 침수 위험 등 안전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사업인 ‘대한민국 안전 리빌딩’ 사업은 아직 내년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국민제안으로 대책에 포함된 재난관리 인력 확충 및 전문성 강화, 지자체 재난안전상황실 상시 운영체계 구축 등 8가지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진행 상황 확인도 쉽지 않았다. 정부는 행안부 누리집에 ‘안전시스템 개편’ 별도 웹페이지를 만들어 진행 상황을 수시로 알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이후 추진 경과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다. 각종 정책자료, 보도자료만 쌓여 있어 한눈에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해식 의원은 “정부는 지난 4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화재, 태풍, 집중호우, 가뭄, 폭염 등 기후 및 사회 재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한다고 했지만, 반복되는 참사를 막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들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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