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엄벌주의 그늘에 선 국가폭력 피해자

한 시민이 박씨를 위해 작성한 탄원서. 홈리스행동 제공

흉기를 들고 집 앞을 돌아다닌 혐의(특수협박)로 60대 남성 박아무개씨가 23일 구속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긴급체포(17일)→구속영장 신청(19일)→검찰송치(23일)로 이어지는 경찰 수사가 속전속결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런데 앞서 법원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 그의 불구속 수사를 바라는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됐다. 무차별 흉기 난동 범죄로 사회적 공분이 들끓고 있는 이때, 시민 1015명은 왜 그를 위해 재판부에 선처를 구했을까?

탄원서에 담긴 그의 본모습은 이렇다. 그는 중증 수준의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그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뒤늦게 호적을 취득해 법적 나이는 60대이지만, 실제 나이는 10살 이상 많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무호적 상태였던 그는 ‘노란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에 수감돼, 강제 노동과 폭행,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운 좋게 주어진 틈을 타 어찌어찌 복지원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40∼50의 지능지수, 3∼5살의 사회성지수를 가진 그를 거둬줄 곳은 없었다. 그 탓에 평생을 농장과 공장을 전전하며 무상 노동을 제공해주고 숙식을 해결하거나, 부랑자시설에서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임대주택에 입주하며 생애 처음으로 안정된 거처를 얻었다.

뒤늦게 찾아온 평온을 깬 건 집 앞 골목을 유난스럽게 지나가던 오토바이 소리였다. 갑작스레 들린 큰 소리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상적인 인과관계 추론이 불가능한 그는 누가 자신을 괴롭히려 큰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흉기를 들고 집 앞을 5분간 배회하다 다시 들어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밖에서 나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협박을 주려고 칼을 들고 나갔는데 협박도 못 주고 소리만 지르고 들어왔다”라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불운한 삶을 살았다고 ‘흉기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발달장애로부터 비롯된 과잉행동을, 일반 사람들과 동등한 잣대로 재단해 처벌하는 것을 옳다고만 할 수도 없다. 그가 흉기를 든 행위에 범죄를 성립시킬 고의성이 있는지 없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형사 사법 절차상 여러 권리를 발달장애인에게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경찰 검거 후 17시간30분을 홀로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그의 말이 ‘범행동기’가 돼 언론에 보도됐다. 피의자 심문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주변이 시끄러워 홧김에 죽이러 나간’ 흉악 범죄자가 됐다. 경찰은 앞서 그를 체포하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 등의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을 이해조차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기초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는 이날부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이감된다. 적어도 1015명의 시민은 그가 ‘엄벌주의’란 이름 아래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지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그에게, 그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은 없을 테니까.

심우삼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