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동자동 최상옥씨가 거주하는 1평 남짓한 방 모습. 이 방은 서울시 기준상 쪽방이 아니다. 홈리스주거팀 제공
“밥을 해 먹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좁은데 쪽방이 아닙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주민 최상옥씨는 이불도 다 펴기 어려운 1평 남짓한 방에서 살지만, ‘쪽방’ 거주민이 아니다. 서울시 조례상 ‘쪽방 주민’은 시장이 별도로 정한 쪽방밀집지역에서 거주하는 자를 말하는데, 최씨가 사는 집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서울시에서 쪽방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지원사업(동행목욕탕, 동행식당 등)도 최씨는 받지 못한다. 최씨는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 사각지대 쪽방 대책 요구’ 기자회견에 나와 “우리도 같은 인간인데 사람같이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등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권익 활동을 하는 16개 단체가 꾸린 ‘홈리스주거팀’이 이날 발표한 실태조사(7월 말~8월 초)를 보면, 최씨와 같은 ‘사각지대 쪽방’이 동자동에서만 75가구(방)였다. 이 방들의 면적은 4~5㎡로 약 1평(3.3㎡)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냉방 시설은 한 곳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화장실 등 필수편의시설도 대부분 공용이었다. 단독 화장실이 있는 방은 13곳(17.3%)에 불과했다. 화장실은커녕 공용 샤워실조차 없는 방도 14곳(18.7%)이나 있었다. 쪽방이 아니라 동행목욕탕 혜택도 받지 못해 이들의 ‘씻을 권리’는 사실상 박탈된 것과 다름없다.
화재에도 취약하다. 전체 조사 가구 중 소화기는 66.7%, 화재감지기는 33.3%의 가구만 보유했다. 스프링클러와 비상벨은 아예 없었다. 지난해 서울역 일대 쪽방의 소화기가 90% 이상, 비상벨이 절반가량 설치된 것과 견줘 ‘사각지대 쪽방’은 안전에서 더 취약한 셈이다.
14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 사각지대 쪽방 실태 발표 및 대책 요구 기자회견에서 쪽방 주민 차재설씨가 ‘쪽방을 규정하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3홈리스주거팀 제공
조사대상자의 85%는 현재 거처를 쪽방이라 판단하고 있다. 방이 좁고 시설도 전부 다 같이 사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영등포 사각지대 쪽방 주민 주재긍씨는 “나는 매우 좁고 환경이 열악한 고시원에 사는 데, 쪽방 주민이 아니라 지원도 못 받는다”고 했다. 차재설씨는 “같은 환경에 살지만 쪽방 주민으로 등록된 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며 “쪽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홈리스주거팀은 “사각지대 쪽방 주민들은 서비스를 못 받는다는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서울시는 쪽방 주민에 대한 기준을 바꾸고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울시 쪽은 쪽방 주민 확대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설명을 들어보면, 쪽방 주민 기준은 지난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라 지정해왔다. 그러나 쪽방 주민에 대한 지원대책이 생겨날수록 이를 악용하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방을 의도적으로 쪼개는 식의 ‘불법 개보수’가 늘면서 지원사업이 오히려 쪽방을 양산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그간 쪽방 주민을 늘리지 않는 쪽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사각지대 쪽방 주민들의 열악한 환경을 파악하고 쪽방 관련 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의 필요성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쪽방이 무작정 양산되는 부작용을 고려해 쪽방 주민 확대는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