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지난 3월4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현재 8개 정부부처에는 성차별 해소를 위해 성인지 관점을 반영한 정책을 발굴·추진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 확산 등의 일을 하는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있다. 2018년 ‘미투’ 운동을 계기로 분야별 성평등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19년 5월 신설된 성평등 전담부서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며 각 부처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맡은 사업 예산을 많게는 절반 이상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성평등 정책이 계속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24일 고용노동부 등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있는 7개 정부 부처(고용노동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 경찰청. 대검찰청은 자료 미제출)의 내년도 예산안 자료(세부·내역사업 기준)를 살펴본 결과, 노동부의 ‘고용평등 상담지원’ 예산이 54.7% 삭감(올해 12억1500만원→5억5100만원)되는 등 일부 부처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사업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2000년부터 일터에서의 성차별·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은 노동자의 고충을 여성·노동단체가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고용평등상담실 운영을 지원해 왔다. 고용평등상담실은 현재 전국에 19개 있는데, 노동부는 민간보조 사업이었던 이 사업을 내년부터 8개 지방고용노동관서에 ‘고용평등 상담창구’를 만들어 직접 수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예산을 반토막낸 것이다.
노동부는 고용노동관서가 상담창구를 직접 운영하면 상담·사건 조사·근로감독의 유기적 연계·협업이 이뤄져 피해 권리구제 및 고용환경 개선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민간단체가 접수한 상담 중에는 진정인이 고용노동관서에 가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사례도 있다”며 “대면 상담의 물리적·심리적 문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대학 내 성범죄 근절 및 안전환경 조성’ 내년 예산(2억4500만원)을 올해(4억9100만원)의 절반으로 삭감했다. 민간 위탁에서 교육부가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예산을 줄였다는 것이 교육부 설명이다. 사업 내용도 대학 내 성범죄 사안 발생·처리 현황 조사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 내 성범죄 사안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인력, 조직, 환경 등을 만들기 위한 대학 전담기구 운영 실태조사는 제외돼, 피해자 보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복지부는 보건복지 분야 성폭력 예방교육 및 성평등 정책 개발을 위한 ‘보건복지 양성평등정책 교육홍보’ 사업에 올해(2억6400만원)보다 24.6% 감소한 1억9900만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다. 법무부의 ‘양성평등정책 지원’ 사업의 내년 예산(2억3300만원)도 올해(2억5300만원)보다 2천만원이 감액됐다.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예산을 7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줄인 것이다.
큰 폭의 예산 삭감이 예고된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이달 존속기간이 올해 12월까지인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계속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 결과는 이번 주에 각 부처에 통보될 예정인데, 일부 부처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미흡 평가를 받아 폐지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련의 조처들로 성평등 정책이 후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정부정책에 성차별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고 성인지 관점에서 정책을 기획,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하는 일인데, 이 직위가 없어지면 그 일들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인공지능의 젠더 편향성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등 성평등이 특정 부처만의 일은 아니다. 성평등 전담부서는 전 부처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숙 의원은 “정부부처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평등 정책 후퇴 양상이 우려스럽다”며 “국회가 이번 예산 심사에서 정부의 성평등 정책 강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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